본문 바로가기

라이프

과소비 때문에 곤란해진 무민 가족 <영화 속 보험 이야기> 무민 더 무비


무민을 아시나요? 핀란드의 국민 캐릭터 무민은 북유럽 문화가 돋보이는 사회적 분위기를 타는 요즘 더불어 각광받는 캐릭터입니다. 바로 얼마 전 던킨도너츠의 프로모션 상품으로 출시된 무민 봉제인형을 구하려는 사람들 덕에 무민 대란이 일어나기도 했죠. 하얗고 두루뭉술하고 통통한 외형 때문에 하마로 오해를 받기도 하는 무민. 하지만 알고 보시면 무민의 정체가 의외다 싶으실 겁니다. 동화, 일러스트, 만화 속 귀여운 캐릭터로만 알려진 무민은 북유럽 신화나 민담에 등장하는 거대한 몸집의 괴물 ‘트롤’이거든요. 트롤은 북유럽인들에게 워낙 잘 알려진 존재인데요, 피터 잭슨 감독의 <반지의 제왕> 속에도 트롤이 등장하지요. 예전에는 이처럼 괴물을 일컫는 단어로 보통 쓰였으나 요즘에는 잘 하려고 노력은 하나 심하게 잘 못하는 사람무민은 그런 트롤을 모티브로 핀란드의 동화작가 토베 얀손(1914~2001)이 창조한 캐릭터입니다.


처음 무민을 만들게 됐던 이야기도 재미있는데요. 어린 시절 식탐이 많던 얀손을 두고 삼촌이 “찬장 속에 트롤이 산다”라고 겁을 주었는데 작가에게 그 인상이 굉장히 강했나 봅니다. 이후 일러스트레이터가 된 토베 얀손이 어릴 적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트롤을 자신의 작품 속 캐릭터인 무민으로 등장시키게 된 것이지요. 1945년 동화책 시리즈로 처음 출간된 무민은 이후 영국 일간지 <런던 이브닝 뉴스>의 연재만화로 이어졌습니다.


 

무민 골짜기 안에서 자신만의 규칙과 철학을 갖고 사는 이 이상한 생명체들의 이야기는 이제 핀란드뿐만 아니라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으며 지속하여 오고 있습니다. 특히 북유럽에서 무민의 인기는 미키 마우스에 버금갈 정도죠. 핀란드의 칼리오 섬에는 무민의 활약상을 집대성한 무민 테마파크가 마련되어 사람들의 관심을 끌며 인기를 실감하게 해줍니다. 특히 이번에 개봉한 애니메이션 <무민 더 무비>는 무민 작품을 통틀어 역사적인 가치가 있는 작품인데요. 2014년 토베 얀손 탄생 100주년, 무민 탄생 70주년을 기념하여 핀란드와 프랑스가 합작해 정감 있는 2D 애니메이션으로 만들게 된 작품입니다. 그간 스웨덴, 폴란드, 일본 등에서 인형극, 스톱모션 등의 기법을 활용한 TV 애니메이션으로 무민이 만들어진 적은 있지만, 극장용 장편 애니메이션으로 선보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니 극장에서 무민을 만날 수 있는 더 뜻깊은 기회이기도 합니다.


애니메이션에 앞서 10여 권이 넘는 원작 동화책을 죽 이어서 보면 무민의 스토리와 세계관을 더욱 자세히 엿볼 수 있는데요. 집을 잃고 새집을 구하기 위해 나선 무민의 모험을 그린 <무민, 도적을 만나다>, 가족이 없던 무민이 무민 파파와 무민 마마를 만나게 되는 <무민, 가족과 함께 살다>, 겨울잠을 자려던 무민 가족이 겨울 스포츠 대회를 경험하는 <무민의 겨울 스포츠>, 무민 가족이 수프 단지에 숨어 있던 꼬마 미를 만나는 <무민, 집을 짓다> 등 원작의 무민 가족은 핀란드의 광활한 대자연을 형상화한 ‘무민 골짜기’에 모여 살면서 다양한 경험을 나눠갑니다. 처음 부모 없이 지내던 무민이 무민 파파와 무민 마마를 만나 따뜻한 가족을 형성하고, 난파된 밈블 가족을 구해서 함께 숲에서 생활하는 캐릭터들의 모습은 무민 스토리를 구성하는 기본 뼈대라고 할 수 있죠. 무민이 태어난 고장 북유럽 핀란드의 공동체적인 세계관이 무민 가족의 생활상에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고 볼 수 있거든요.


애니메이션 <무민 더 무비>는 그중 1955년 발표된 원작 <무민, 리비에라 해변에 가다>를 바탕으로 만들어졌습니다. 한가로이 일상을 보내던 무민 가족에게 해적 떼가 찾아오며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해적들이 떠나고 그들이 두고 간 책을 보던 무민 가족은 이곳이 아닌 더 좋은 곳이 있다는 걸 알게 되고 여행을 꿈꾸는데요. 무민 가족이 꿈꾸는 곳은 뜨거운 햇빛이 비치는 프랑스 남쪽의 섬 리비에라. 돈 많은 귀족이 술과 도박을 즐기는 곳입니다. 

 


무민들도 우리처럼 다른 이상적인 공간, 휴가지를 꿈꾸는 모습이 참 재밌는데요. 핀란드의 광활한 숲을 배경으로 한 무민골짜기야 우리에게는 매력적이지만 그들에게는 또 우울한 날씨라 좀 재미가 없었던 것이지요. 그렇게 휴양지에 온 무민 가족의 소동 극이라는 점에서 여름 바캉스 시즌에 더할 나위 없이 어울리는 이야기가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휴가지에서 무민 가족의 모습은 어디서 많이 본 듯해 웃음을 자아내는데요. 그곳에서 예술가 친구를 사귄 무민파파는 가족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 이상적인 이야기만 늘어놓기 바쁘고, 무민의 여자친구 스노크메이든은 휴양지에 온 기분에 들떠 돈 많은 귀족을 만나 한눈을 팔고, 또 이에 질투를 느끼는 무민은 귀족에게 결투를 신청하는 소동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흥청망청, 다른 바캉스족들처럼 무민 가족도 휴가의 분위기를 즐기는 것인데요. 특히 호텔에 도착한 무민 가족의 행각이 재미있습니다. 초특급 호텔에 스위트룸을 떡하니 잡고 룸서비스도 거침없이 이용하는 데서 왠지 불안 불안하기만 한데요. 역시나 화폐 개념이 없는 탓에 이 모든 서비스가 청구될 거란 사실을 모르는 게 함정이라면 함정이지요.



애니메이션에서는 이렇게 최고급 서비스를 활용하면서도 정작 작은 것에 만족하며 살아가는 무민의 생활방식이 그대로 엿보입니다. 가령 무민 가족이 스위트룸에 들어가 “방이 너무 넓다”면서 다른 공간은 사용하지 않고, 가족 모두가 한꺼번에 모든 생활을 침대 하나에서 옹기종기 모여서 합니다. 위기를 모면하는 방식도 재미있는데요. 끝도 없는 청구서에 놀란 이들 앞에 다행히 무민의 여자친구 스노크메이든이 카지노에서 번 돈이 도움됩니다. 그런데 호텔에 비용을 지급하고 차액이 남자 오히려 “필요 없다”라며 되돌려 받지 않습니다. 


이처럼 돈에 연연하지 않고 다른 누군가와 경쟁심이 없는 무민 가족의 평소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 주는 에피소드가 주를 이루는데요. 그런 그들이 핀란드의 숲을 벗어나 자본이 움직이는 세계와 충돌하는 지점은 웃음과 교훈을 선사해주는 지점입니다. 마침내 집에 돌아온 무민 가족들은 “많은 곳을 다녔지만 내 종착지는 하나였다. 바로 이곳, 무민 골짜기.”라고 말하며 무민 골짜기의 가치를 설파하고, “역시 평화롭게 감자 심고 꿈꾸며 사는 게 최고야”라고 소박한 그들의 삶을 예찬하기도 합니다.


 

<무민 더 무비>는 먼 핀란드의 이야기지만 우리 모습에 대입시켜도 무리가 없어 보이는 한여름의 대소동을 그리고 있습니다. 동화에서 출발한 만큼 애니메이션의 에피소드도 복잡하지 않고 간결하게 펼쳐져 쉽게 받아들여지는데요. 이렇게 사실적인 캐릭터가 도출된 데에는 토베 얀손의 어린 시절 경험이 크게 작용했다고 합니다. 조각가인 아버지와 일러스트레이터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작가는 가난한 유년기를 보냈는데, 예술가라는 이상에 집착했던 보헤미안 아버지와 달리, 어머니는 일러스트를 그려 집안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다고 합니다. 생계를 위해 바삐 그림을 그리던 어머니의 모습이 특히 장녀인 토베 얀손에게 영향을 미쳤던 것이지요. 그녀가 곁에서 지켜본 부모님의 모습이 작품 속 무민파파, 무민마마와 꼭 닮았습니다. 최근 주목받는 3D 애니메이션과 달리 <무민 더 무비>는 직접 그린 손 그림으로 만든 2D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었는데요. 정감 어린 그림체는 <무민 더 무비>를 더욱 가치 있게 해주는 지점입니다. 자비에르 피카드 감독은 작가가 연필로 그린 표현 기법에 대한 존경의 표시로 CG를 지향하고 전통적인 방식의 애니메이션 기법을 고수했다고 합니다.



세계적인 캐릭터로 자리매김한 무민. 한때 월디즈니가 무민의 판권 구매를 시도했으나 토베 얀손은 이를 거절하고 무민을 ‘핀란드의 유산’으로 견고히 지켜왔다는 이야기도 무민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뒷이야기입니다. 애니메이션 <무민 더 무비>는 그 긴 세월을 고집스럽게 지켜온 신비로운 공동체 무민 골짜기로 들어가는 좋은 관문이 되어줄 것입니다.




 

   관련 글 더보기


   ▶영화기자가 들려주는 영화 속 보험이야기 <극비수사> <바로가기>

   영화기자가 들려주는 영화 속 보험이야기 <위아영> <바로가기>

   영화기자가 들려주는 영화 속 보험 이야기 <스틸 앨리스> <바로가기>






이화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