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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재즈계의 제임스 딘, 쳇 베이커의 파란만장 인생 이야기 <본 투 비 블루>


<본 투 비 블루>를 짧은 영상으로 먼저 접했는데요. 트럼펫을 연주하는 에단 호크의 주름과 영상만으로도 쳇 베이커의 행적을 따라가는 전기영화 <본 투 비 블루>에 매혹당할 확률은 100%였습니다. ‘재즈계의 제임스 딘’으로 불릴 정도로 수려한 외모로 각광받은 뮤지션. 아마 그를 잘 몰라도 그가 연주하고 부른 <오버 더 레인보우>나 <마이 퍼니 발렌타인> 같은 서정적인 재즈 음악들은 귀에 익었을 텐데요. 바로 쳇 베이커를 설명해주는 대표적인 곡들이지요. 

 

<쳇 베이커 오버 더 레인보우 연주>




재즈의 대중화에 앞장선 뮤지션, 쳇 베이커


흑인, 동부의 음악으로 대변되는 묵직하고 장중하고 어두운 재즈 대신, 일명 ‘웨스트코스트 장르’의 대표주자로 재즈의 대중화에 앞장선 뮤지션이 바로 쳇 베이커였습니다. 1950년대 당시 한 잡지사에서 설문을 조사했는데 마일스 데이비스를 꺾고 1위 자리를 차지하기도 할 정도로, 당시 쳇 베이커는 정통 재즈 뮤지션들에게는 위협적인 혜성과 같은 존재였지요. 


 

하지만 빠른 성공과 명성과 달리 그의 인생은 순탄치 않았습니다. 당시 재즈 뮤지션들에게 고질적인 병폐였던 마약에 심하게 중독되어 있었고, 여자 문제도 상당히 복잡했습니다. 인기는 천정부지로 솟았고, 그를 폄하하고 시기하는 사람들도 늘어갔습니다. 그런 생활 속에서 쳇 베이커는 한번 손을 댄 마약에서 헤어 나올 수 없게 됩니다. 마약을 위해서 돈이 필요했고, 돈을 벌기 위해 연주를 했다고 알려져 있었을 정도니까요. 1988년 암스테르담의 한 호텔에서 떨어져 죽은 후, 그 죽음에 대한 의견도 분분했습니다.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한 아티스트의 추락. 그 사이에는 과연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쳇 베이커의 영화를 만들기로 한 로버트 뷔드로 감독은 그를 두고 ‘재즈 역사상 가장 흥미로운 뮤지션’이라는 말로 그의 파란만장한 인생을 설명하려 합니다. 




흑백영화 같은 암흑기에서 벗어나 재기에 성공하다!


<본 투 비 블루>는 쳇 베이커의 많은 시기 중 1966년을 시작점으로 삼습니다. 60년대는 그의 인생을 통틀어 볼 때 별로 순탄치 않던 시절입니다. 영화의 시작, 흑백의 화면으로 보이는 것은 마약에 중독된 쳇 베이커(에단 호크)의 모습입니다. 그의 옆에는 그 쾌락을 함께할 여성도 있지요.


<사진출처 : 네이버 영화>


바로 그때 쳇 베이커의 아내가 등장하면서 한바탕 소동이 일어나게 되는데요. 컷! 이 상황은 쳇 베이커가 자신의 전기 영화를 찍는 촬영 현장이었습니다. 이내 칼라로 전환된 화면 속이 ‘현재’입니다. 영화감독은 그를 향해 “이 영화로 재기하는 거야!”라며 용기를 북돋워 줍니다. 그러나 촬영 현장에서 상대역으로 만난 여성 제인(카르멘 에조고)와 함께 술을 마시고 돌아가던 중, 쳇 베이커는 갑자기 나타난 괴한에게 심하게 폭행을 당합니다. 잇몸이 내려앉고 앞니가 나간 상황. 피아니스트에게 손가락이 부러진 것과 비교할 수 있을까요. 트럼페터에게는 실로 치명적인 사고 앞에서, 쳇 베이커의 재기는 더 이상 불가능해 보입니다. 이후의 이야기는 쳇 베이커가 다시 무대에 서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내용입니다. 어릴 적 그는 아이들이 던진 돌에 맞아 앞니 하나가 부러진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모두가 연주를 포기해야 한다고 말했지만, 재능과 노력을 통해 오히려 단점을 테크닉으로 개발한 그였습니다. 

 


물론 이번 상황은 더 심각해 보입니다. 사고로 인해 아름다웠던 그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어집니다. 사람들은 “저 사람이 쳇 베이커인거 아세요?”라고 못 알아 볼 지경이 되었는데요. 망가진 이를 극복하기 위해 그가 피를 흘리며 욕조에서 연주를 하는 장면이 잊혀지질 않는데요. 제인은 그런 그의 열정을 알고, 곁에서 그를 보살펴 줍니다. 쳇 베이커의 생애 중에서 어쩌면 가장 힘겨웠을 당시를 뚝 잘라내어 봄으로써, 로버트 뷔드로 감독은 뮤지션으로 그가 가진 집념과 의지가 얼마만큼인지 보여주려 합니다. 그는 경력이나 돈이 아니라, 단지 연주를 할 무대를 되찾기 위해 고군분투합니다. 결국 쳇 베이커는 “부족한 기술 덕에 소리에 기술이 생기고 예전보다 더 깊은 소리”를 내는 단계에까지 이르게 됩니다. 젊은 시절의 치기가 사라지고, 느리면서도 집중력 있는 사운드를 새롭게 구가하게 된 것이지요. 사실 쳇 베이커의 재능은 타고 난 것이었습니다. 그의 파트너 제리 멀리건이 그를 위한 곡을 작곡하는 사이, 그는 재규어를 타고 하이킹을 하며 즐기는 타입이었죠. 


<사진출처 : 네이버 영화>


그가 마약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게으른 천재’ 뮤지션에게 가해진 천형 같은 것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쳇 베이커가 가진 매력은 상당했습니다. 브루스 웨버는 쳇 베이커에게 반해 그를 그린 다큐멘터리 <렛츠겟 로스트>를 만들기 위해 100만 달러나 되는 사재를 털었다고 합니다. 


쳇 베이커의 고군분투만큼이나 눈에 띄는 것은 쳇 베이커를 연기한 에단 호크의 호연입니다. 언제부터인가 에단 호크에게서 주름은 익숙한 것이었는데요. 리차드 링클레이터와 함께 한 <비포 선라이즈>의 청년기를 지나 <비포 선셋> <비포 미드나잇>을 거치며, 자연스럽게 인간적인 ‘주름’을 보여줘 왔던 것이지요. 최근 <보이 후드>에서도 마찬가지였고요. 하지만 이번 영화에서 그가 보여준 쳇 베이커는 에단 호크의 기존의 나이 든 모습과는 사뭇 다른 성질의 것이었습니다. 쳇 베이커의 푹 꺼진 볼과 주름, 연주를 하지 못할까 불안에 떠는 눈빛은 쳇 베이커라는 아티스트를 설명하는 가장 극적인 방법으로 사용됩니다. 에단 호크는 영화 속 연주를 대역 없이 똑같이 하고, 노래도 직접 불렀는데요. 

 


근 6개월을 꼬박 연주 연습에 바쳤다고 합니다. 특히 에단 호크는 이미 16년 전 '비포 시리즈'를 함께 해온 오랜 파트너 리차드 링클레이터 감독과도 쳇 베이커의 영화를 만들려고 계획을 해왔는데요. 덕분에 쳇 베이커의 속성에 대해서 그만큼 많은 부분을 이번 영화를 연출한 로버트 뷔드로 감독과 공유하고 의논해 오기도 했다고 합니다. 더불어 최근 에단 호크는 배우 활동에만 머무르지 않고 다큐멘터리 <피아니스트 세이모어의 뉴욕 소네트>를 직접 연출하기도 했는데요. 


 

영화는 부와 명예가 예술가로서의 삶에 방해가 된다는 걸 알고 피아노 교사로 조용히 은둔해 살고 있는 피아니스트 세이모어 번스타인의 삶의 철학을 그리고 있습니다. 에단 호크 역시 늘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배우로 생활하고 있지만 극심한 무대 공포증으로 스트레스에 빠져 있던 중이었는데요. 단출한 삶을 살고 있는 세이모어를 만나고 그 역시 다시 배우로서의 삶을 되돌아보는 계기를 마련해주게 되는 것이지요. 결국 <본 투 비 블루>의 쳇 베이커의 아픈 방황 속에도 이런 예술가로서의 고뇌가 함께하고 있었던 게 아닐까요.


<본투비블루 메인 예고편>


자신을 표현해 내야 하는 그 절실한 순간들을 살아온 한 뮤지션. 이 영화를 보면, 더 많이 쓸쓸한 정서를 담은 그의 음악을 듣고 싶다는 마음에 온통 사로잡히게 됩니다. 쳇 베이커를 모르던 사람들조차도 이 영화를 보고 나면, 깊게 쳇 베이커에 빠져들게 해 줄 영화입니다. 가장 나약한 순간에, 음악을 향한 열정을 놓지 않았던 쳇 베이커의 의지를 영화와 그의 음악을 통해서 전달 받길 바랍니다.






이화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