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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SNS에서의 ‘좋아요’를 위한 한 소녀의 목숨을 건 미션 수행 이야기<너브>


새벽에 자다 깨서 보니 귀엽기만 한 5살 아들이 소파에 어른처럼 다리를 꼬고 앉아 자신의 핸드폰을 꺼내들고 영상을 클릭하며 웃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가끔은 무섭게 느껴진다는 동료. 성인 계정으로 들어갔으니 해외의 영상까지 거르지 않고 볼 수 있다는 건데, 그 어린아이가 클릭 한 번으로 어떤 영상이든 마구 넘나드는 모습이 조금 섬뜩했다고 하는데요. 동료는 그날 스마트폰의 즉각적인 인지와 활용으로 볼 때 자신과 아들의 세대가 달라지고 있다는 걸 확연히 느꼈다고 합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이런 풍경은 상상할 수가 없었는데요. 아날로그 세대를 거쳐 이제 막 디지털을 접한 세대와 달리, 사고를 하면서부터 디지털 미디어와 영상문화를 접한 세대들은 생각의 방식도 달라질 거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특히 SNS를 통한 소통의 문제는 이제 현대사회를 이해하는 중요한 키워드가 된지 오래입니다. 


이런 문화에 대한 접근과 경고는 이제 영화로도 자주 접할 수 있게 되었는데요. ‘현피’('현실'의 '현'과 PK(Player Kill)의 'P'의 합성어로 게임, 메신저 등 웹상의 일이 실제로 살인, 싸움으로 이어지는 것을 나타내는 말)를 소재로 한 <잉투기>나 인터넷 마녀사냥을 소재로 한 <소셜 포비아>같은 작품 등이 이 같은 소재를 효과적으로 그려내고 있습니다. 


 

SNS를 통한 게임을 통해 그 위험도와 심각성을 경고한 영화 <너브> 역시 비슷한 맥락에서 읽히는 작품입니다. 디지털 미디어, SNS 소통이 일반화된 1318세대의 풍경과 심리가 만나, 손에 땀을 쥐는 흥미진진한 스릴러로 탄생했는데요. 바로 SNS 미션 수행 게임 ‘너브’에 빠져든 십대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습니다. 


작동 원리는 매우 간단합니다. 가입자는 ‘플레이어’와 각자가 지지하는 플레이어에게 배팅을 하는 ‘왓쳐’로 활동하게 됩니다. 플레이어의 판단과 행동을 실시간으로 지켜보고, 댓글로 영향을 행사할 수 있다는 점에서, 라이브 방송과 유사한 형태라고 볼 수 있죠. 플레이어는 왓쳐들이 제시하는 미션을 수행하고, 수행에 따른 상금을 받게 됩니다. 한 단계가 올라갈수록 상금의 크기도 배 이상으로 커지는데, 그만큼 위험의 수위도 높아진다는 게 함정입니다.



처음에는 엉덩이에 땅콩버터를 발라서 개한테 먹게 한다든가, 치어 리딩을 하다가 치마를 걷어 올려 관중에게 깜짝 쇼를 하는 등 십대들의 짓궃은 장난 정도로 보이는데요. 이렇게 재미로 시작한 작은 도전이 건물과 건물 사이에 사다리를 놓고 건너가기, 눈 감고 시속 100킬로미터로 오토바이 달리기 같은 생명이 위함한 도전까지 전개됩니다. 얼핏, 죽을 각오로 이런 도전을 하는 것이 이해가 안될 법한데요. “너브 하다가 죽은 아이도 있어. 그런데 멈출수가 없다는 것이 함정이지.” 영화 속 한 친구의 대사 속에 이 게임의 무서운 작동원리가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너브>의 주인공은 이제 막 대학 입학을 앞둔 소심한 성격의 여학생 비(엠마 로버츠)입니다. 비가 너브 게임에 가입한 계기는, 너브 게임을 통해 담대함을 인정받으며 학교의 대스타가 된 절친 시드니(에밀리 미드)의 영향이 큽니다. 좋아하는 이성에게 고백한 번 못해보고 존재감 없는 자신과 달리, 시드니는 인스타그램에서 ‘좋아요’를 얻고 수익금까지 챙겨가는 부러운 대상인데요. 본인 역시 시드니 같은 ‘너브(Nerve, 용기)’를 가지고, 스타가 되고 싶은 욕망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지요. 비의 친구는 위험한 게임에 발을 담근 그녀를 향해 “시드니에 대한 질투 때문에 그래? 아니면 돈 때문에 그래?”하고 다그치는데요. 아마 어느 하나라고 단정 짓기 힘든 복합적인 원인이 그녀를 움직이게 하는게 아닐까요. 


유튜브나 인스타그램 등으로 자신을 알리고, 또 수익을 얻는 게 일반화된 지금, SNS를 통해 인기와 부를 창출하려는 욕망은 지금 세대의 사고방식과 밀접하게 연관이 되어 있는데요. 인기를 얻기 위해서, 주목 받기 위해서는 자신도 모르게 더 자극적인 도전을 하게 되는 게 아닐까요.


 

미래에 대한 불확실한 청춘, 자신감 없었던 비는 이렇게 익명의 또래들이 지켜보고 주목해 준다는데 우쭐해지게 됩니다. 그리고 게임에서 파트너가 된 남자 이안(데이브 프랭코)과 함께 점차 멈출 수 없는 위험한 도전을 감행하게 됩니다. <너브>는 아프리카 방송을 보듯 거의 실시간으로, 게임에 참가한 비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는데요. 속도감 있는 편집과 게임 화면 같은 영상 구현으로 덕분에 마치 관객이 영화 속 와쳐가 된 듯한 착각에 빠져들게 만듭니다. 비트가 강렬한 록 음악과 주인공의 심리를 대변하는 힙합 음악 등의 적극적 사용도 한몫하는데요. 


마치 실내 구석구석에 CCTV와 캠코더를 설치한 것 같은 촬영 방식으로 관객에게 그걸 지켜보는 듯한 감흥을 준 페이크 다큐멘터리 <파라노말 액티비티> 시리즈와도 비슷한 맥락에서 읽히는 작품입니다. 마침 <너브>의 연출을 맡은 헨리 유스트, 아리엘 슐만 감독이 <파라노말 액티비티> 3, 4편의 연출을 맡은 장본인이기도 하고요.

 


<너브>는 단순히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스릴러에서 그치지 않고, 브레이크 없는 이 심리게임에 대한 비판의 장치를 마련하는데요. 바로 플레이어를 부추기고, 위험에 내모는 왓쳐들을 향한 쓴소리입니다. 사회적으로 알려졌다는 이유로 오늘도 SNS의 댓글 창에 무수히 덧입혀지는 비방과 인신공격 때문에 고통받는 이들, 그 피해 사례에 대해서는 심각하게 고민해 보고 해결해야 할 문제입니다.


 

영화에서 처음 뭐든 도전하지 못하던 비를 향해 친구는 “인생은 금방 가. 가끔 도전도 해봐야지”하고 부추깁니다. 무모한 도전을 바탕으로 한 ‘용기’는 결국 영화 말미 이르러, “가면 뒤에서, 닉네임 뒤에서 용기를 내는 건 쉬워.”라며 우리 역시 이 무서운 게임의 방조자일 수 있다는 화살로 돌아옵니다. 스릴러 영화지만, SNS로 소통하는 사회에서 진짜 정의와 용기가 무엇인지 되짚어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너브>가 시사하는 바가 다가오는 이유입니다. 



이화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