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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웃음스틸러 유해진, 관객의 웃음을 사로잡다 <럭키>


21회 부산국제영화제도 축제의 막바지에 돌입했습니다. 거장 감독들의 신작부터 올해 세계영화의 화제작들이 대거 포진해 있는, 그야말로 영화의 12첩 반상 정도라고 할까요. 수많은 작품 중 기억나는 한 편이 있습니다. 바로 한국단편 경쟁 섹션에서 상영된 선종훈 감독의 <마음이 닿으면>이라는 작품인데요. 영화는 골프 캐디로 아르바이트를 하며 연기의 꿈을 키우던 배우 지망생 연정이 갑작스럽게 영화의 오디션에 참여하게 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습니다. 식은땀을 흘리며 오디션장에 들어서는 연정을 보면서 곧바로 영화 <럭키>의 기막힌 소동극이 떠올랐습니다.




▶냉혹한 킬러와 젊은 초짜 배우 지망생의 삶이 바뀌다


이계벽 감독이 연출한 <럭키>에서 형욱(유해진)은 매사 철두철미하고, 의뢰인의 목표를 100% 달성하는 완벽한 일처리로 부를 축적한 ‘성공한’ 중년의 킬러입니다. 잘 정돈된 최고급 아파트에서 살고 의뢰가 끊이지 않는 탓에 그의 삶은 그 자체로 이미 완성형입니다. 아마 그날의 사고로 인한 기억상실증이 아니었다면, 형욱은 그 ‘익숙함’에서 절대 벗어나지 않았을 겁니다. 



작업을 끝낸 후 우연히 들어간 목욕탕 바닥에 떨어진 비누에 미끄러지면서 사고를 겪게 됩니다. 그 시간 같이 목욕탕에 있었던 재성(이준)은 잘 안 풀리는 젊은 초짜 배우 지망생이었는데요. 형욱이 사고로 인해 기억상실증에 걸리자 재성은 힘들었던 그의 인생을 바꿔보고자 형욱의 목욕탕 열쇠와 자신의 열쇠를 바꿔 가져갑니다. 



형욱은 재성의 옥탑방, 잔고 없는 통장, 보조출연자의 삶을 고스란히 떠맡게 되었고, 반대로 재성은 냉혹한 킬러 형욱의 삶을 살게 되었죠. 하지만 재밌는 건 완벽한 삶을 살았던 형욱이 새로운 환경에서 자신의 길을 찾게 된다는 것 입니다. 병원에서 퇴원 후 재성으로 살면서 형욱은 일에만 매달려 사람들과 관계를 끊고, 자기만의 생활에 갇혀 외롭게 살아 온 현재의 생활을 돌아보고, 함께 어우러지는 삶, 자신이 나아갈 길을 새롭게 찾아 나가게 됩니다.


 


유해진표 능수능란 웃음을 선사해줄 영화 [럭키]


<타짜>의 고광렬로 또 <해적: 바다로 간 산적>의 해적 철봉으로 장면을 장악하는 웃음을, 또 TV 예능 <삼시세끼>의 ‘참바다씨’로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을 선보여 온 유해진이 냉혹한 킬러 형욱에서 아직은 배우로 자리를 잡지 못한 재성까지, 거의 1인2역의 연기를 보여주는데요. 그는 ‘유해진 표’ 특유의 능수능란한 웃음뿐만 아니라 최근 <베테랑>에서 재벌 3세 조태오(유아인)의 재산을 관리하는 오른팔 최상무, <그놈이다> 연쇄살인마 민약국 등에서 보여준 진지한 연기도 겸해 또 한 번 관객들에게 예상하지 못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는데요. 



다소 과장된 <럭키>의 유머 코드가 작동하기까지는, 이렇게 다양한 연기로 스펙트럼을 확장해 온 배우 유해진의 공이 큽니다. 바로 설득력과 재미를 획득하는 토대를 마련해 준 것이지요. 대작 영화들의 출현 속, 오랜만의 소소한 코믹 드라마 <럭키>는 그야말로 유해진이라는 배우가 있어서 기획되고, 또 만들어진 영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요. 말을 아끼고, 섣불리 감정을 드러내지도 않는 형욱이라는 캐릭터를 통해서 유해진은 오히려 관객으로부터 거듭 웃음을 끌어내는데요. 이미 ‘붕 떠 있는’ 영화를 현실감 있게 안착시키는, 자신은 웃지 않지만 관객을 웃음으로 몰고 가는 고도의 연기 신공을 발휘합니다. 




연기경력 20년차 베테랑 배우 유해진을 돌아보다.

 

이 작품을 통해 유해진 역시 올해로 스크린 연기 경력 20년차의 자신의 초창기 모습을 되돌아보는 기회가 되었다고도 하는데요. 그는 영화현장에서 보조출연자로 설움 받으며 노력하는 무명배우 재성의 생활을 보면서, 연기를 시작할 때의 어려웠던 시절을 떠올렸다고 합니다. “예전 내 생활에서 팁을 얻어 응용도 많이 했어요. 내가 그렇게 살았으니까.” 배우가 되겠다고 무작정 서울에 와서 친구 집을 전전하며 살았던 당시, 유해진은 늘 작은 짐을 싸서 다녔다고 합니다. 오늘은 이 옥탑방에서 잠을 청할 수 있지만, 언제 또 어디로 가게 될지 모르니 언제든 나갈 수 있게 단촐한 짐을 꾸려서 지냈던 것이지요.


주연배우 유해진이 정의하길 이 영화가 “화려한 폭죽이 아니라 쥐불놀이 같은 영화”라고 하는데요. 부담 없이 전하는 웃음과 드라마로 구축된 영화라는 점에서 저 역시 그의 비유에 동의하고 싶어집니다. 



이화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