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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

직장인 퇴직연금, 노후 대비책일까 내 집 마련의 수단일까?

“직장인 김 모(40세) 씨는 시골에 계신 아버지께서 갑작스레 뇌출혈로 쓰러지시자, 병원비는 물론 간병비 걱정에 고민하다가 퇴직연금을 3,000만원 정도 찾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퇴직금을 중도인출했다.”


2002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대니얼 카니어만은 “미래 손익은 과소평가하고 현재 손익을 과대평가하는 심리를 현재 편향(Present Bias)”이라고 정의했습니다. 노후는 먼 미래의 일이고 당장 쓸 돈은 많기 때문에, 나중에 후회할 줄 알면서도 노후자금을 중도인출하는 경우를 ‘현재 편향’이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할 수 있습니다. 지난해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김 모 씨처럼 퇴직연금을 중도인출한 퇴직연금 가입자는 3만 1천 명, 인출 금액은 1조 7백억 원, 평균 인출금액은 3천 4백만 원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2015년 말 퇴직연금 적립금은 125조 7천억 원. 퇴직급여를 적립하고 있는 근로자는 총 545만 2천 명으로 가입대상 2명 중 1명이 가입되어 있을 정도로 지난 10년 동안 빠른 성장세를 보여 왔지만 직장인 노후자금 활용 측면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매우 높은 실정입니다.



직장인 퇴직연금 양극화, 노후준비는 오리무중  


1988년 국민연금, 1994년 개인연금, 2005년에 퇴직연금이 도입된 후 10~20여 년이 경과되었지만 직장인과 자영업자들의 실질적 노후 준비는 여전히 취약합니다. 특히 퇴직연금제도 시행 후 상당한 시간이 지났지만 여전히 도입률은 27%에 불과합니다. 근로자 수 300인 이상 사업장 도입률은 78.3%이지만 5인 미만 사업장의 경우 전체 도입 대상 중 47.6%를 차지함에도 도입률은 12%에 불과합니다. 숙박 및 음식점 업은 불과 6.6%로 퇴직연금 도입 양극화가 발생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퇴직연금은 퇴직금을 연금처럼 정기적으로 나눠 받는 것이 합리적인 의사 결정임에도 불구하고 퇴직연금 수급자의 1.5%(3,035명)만이 연금으로 수령했고 나머지 98.5%(20만 2261명)가 일시금으로 수령하며 수령방법의 양극화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특히 2012년 7월 26일부터 퇴직연금 DB 및 DC 가입자들이 퇴직금을 IRP로 수령하도록 근퇴법(근로자 퇴직급여 보장법)이 개정되었지만 퇴직금을 IRP로 수령해서 바로 해지하는 경우가 대부분인 이유는 퇴직금이 노후준비 자금으로 쓰이지 못하고 다른 용도로 사용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방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직장인 노후준비 장애요소 주택구입>의료비>교육비 順 


퇴직금을 중간에 깨는 이유는 다양합니다. 퇴직연금을 중도인출한 연령은 30대가 46.5%, 40대 33.1%, 50대 13.6% 순으로 인출했으며 중도인출 사유는 주택 구입이 절반 이상이었습니다. 거주에 대한 불안이 주택 구입에 대한 과도한 지출로 이어지게 되고 결국 퇴직금을 깰 수밖에 없게 되는 것입니다. 지난해 통계청에 따르면 소득분위별 처분가능소득대비 원리금상환비율(Debt Service Ratio)이 평균 26.6%로 100만 원을 벌면 27만 원을 빚 갚는 데 사용하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연령별로는 40대 가구가 30.2%로 가장 높아 주택구입 등으로 인한 부채상환이 노후준비의 가장 큰 장애 요인으로 보입니다. 보건사회연구원 자료에서도 50~60대 퇴직일시금의 사용 출처가 대부분 생활자금이나 부채상환, 주거비에 사용되고 있는 점은 직장인의 노후준비가 사실상 오리무중일 가능성이 매우 높음을 보여주는 결과입니다.



퇴직연금 중도인출 사유 2위는 장기요양(26.5%)으로 본인, 배우자, 부양가족이 6개월 이상 요양(질병 또는 부상)하게 되어 퇴직연금을 인출하는 경우입니다. 실제 의료비는 연령에 따라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지만, 소득은 오히려 줄어들고 있습니다. 여기에 국민건강보험에서 보장하는 요양급여 이외에 본인부담금과 비급여 부분은 돈이 많이 든다는 이유 때문에 퇴직금을 헐어 쓰는 경우가 발생합니다.

결국 소득 라이프사이클로 볼 때 50대까지는 가장의 책임이 큰 시기로 현재의 생활을 보장하는 것(경제적 사망 보장)이 중요하지만, 60대 이후에는 의료비 보장 중심의 은퇴자산을 새롭게 리모델링할 필요가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퇴직금을 중간에 인출하는 이유로 대학 등록금, 결혼비용, 장례비 등이 10.5%로 나타났습니다. 특히 개인형 IRP(개인형 퇴직연금) 중도인출의 91.4%가 여기에 해당됩니다. 여성 정책 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신혼부부 셋 중 하나는 부모가 결혼비용의 60% 이상을 부담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결혼비용은 당연히 부모가 지원해야 한다는 자식들의 생각에 딜레마에 빠질 수밖에 없고 결국 노후준비는 뒷전이 됩니다.


직장인의 퇴직연금이 퇴직금답게 사용되고 있지 못한 것이 제도적인 문제도 있지만 어쩌면 우리 사회의 부동산에 대한 과도한 지출과 거품 그리고 비급여 의료비의 높은 부담, 자녀에 대한 맹목적 부양이 퇴직연금을 수령한 약 99%가 일시금으로 수령해서 사용하는 이유가 아닐까요? 결국 내 퇴직연금이 집과 의료비, 맹목적인 자녀부양에 사용되지 않도록 사회적 원칙과 제도에 대한 개선도 함께 바뀌어야 할 시점으로 보입니다.




김태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