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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영화기자가 들려주는 영화 속 보험 이야기 <위플래쉬>


 

'위플래쉬(whiplash)'채찍질을 뜻하는 말입니다. 영화 <위플래쉬>에서 이 단어는 영화 속에서 연주하는 재즈의 곡목으로 사용됩니다. 중간 부분 드럼 파트의 ‘더블 타임 스윙’ 주법으로 완성된 ‘위플래쉬’. 영화에서는 독주 부분이 일품으로 꼽히는 곡 위플래쉬를 연주하는 과정이 그려지는데, 묘하게도 이 과정이 곡명의 뜻 그대로, 상당한 채찍질처럼 영화 속에서 압도적으로 다가옵니다. 106분 간 한달음에 휘몰아치는 ‘채찍질’의 과정에서 전해 오는 전율이 엄청납니다. 규모가 크거나 스타 배우가 등장하지 않는데다, 단순한 스토리에도 이 작품이 무려 140만 관객을 동원하면서 화제를 모으는 이유가 여기 숨어 있습니다. <위플래쉬>가 들려주는 ‘미친 연주’가 과연 어떤 모양이기에 이토록 관객들의 마음을 끄는 걸까요?


‘위플래쉬’에 사로잡힌 두 남자를 이제 찬찬히 살펴보려 합니다. 천재 드러머가 되기를 갈망하는 학생 앤드류(마일즈 텔러)와 그의 천재성을 끌어내기 위해 매달린 교수 플렛처(J.K. 시몬스). 영화는 선생과 제자로 얽힌 이 두 남자의 교감을 그리고 있는데요. 먼저 플렛처 교수에 대해서 기술을 좀 해야 합니다. 그는 최고의 실력자이죠. 두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극의 초반 최고가 되고 싶은 앤드류는 플렛처 선생의 지도를 못 받아 안달일 정도인데요. 문제는 플렛처 교수가 우리가 익히 보아왔던 사제지간을 다룬 영화 속 선생님들처럼 학생들의 마음을 이끌어주는 좋은 선생님으로 포장이 되지 않는다는데 있습니다. 플렛처 교수는 그냥,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폭군입니다. 학생들의 인성 교육 따위. 안중에 없습니다. 그에게 중요한 건 오로지 좋은 연주뿐입니다. 이 목적을 향해서라면, 학생에게 모욕적인 언사를 내뱉거나, 의자를 집어던지고, 뺨을 때리고, 면전에서 다른 연주자로 교체 하는 일은 아무렇지도 않게 해댈 수 있는 폭압적인 선생이지요. 


플렛처 교수의 느닷없는 폭력 행사를 보면, 스크린 밖 관객마저도 움찔하게 되는데요. 정작 앤드류에게는 이 압적 지도가 어느 정도 소통이 된다는데 이 영화의 묘미가 있습니다. 앤드류는 미국의 명문 음악학교 셰이퍼 음악학교에 입학한 전도유망한 연주자인데요. 그럼에도 플렛처 교수를 만나기 전에는 별유명하지 않은 밴드에서 메인 드러머의 악보나 넘겨주는 보조 연주자에 불과했습니다. 하지만 플렛처 교수는 그런 그를 눈여겨보았고, 그의 연주에 대해 ‘잘 하고 있다. 제2의 버디 리치가 될 거다’라면서 칭찬을 해줍니다. 이 한 마디로 앤드류의 생활은 180도 변하는데요. 늘 메인 연주자에게 가려져 있고 자신 없던 앤드류가 연주자로서 자신의 가능성에 대해 눈을 뜨게 된 것이지요. 평소 태도만 봐도 이런 변화가 확연하게 전달됩니다. 소심한 성격인데다, 또래 친구들과 지내기보다 방과 후 아버지와 둘이 영화를 보면서 지내던 그는 플랫처 교수에게 인정을 받은 후, 평소 좋아하던 극장 매표소 여직원에게 가서 데이트 신청을 할 정도로 변모합니다. 


앤드류와 달리 그의 아버지는 아들이 평탄한 삶을 살기 원하지만, 정작 그는 승부욕음악에 대한 욕망으로 가득 차 있는데요. 가족들과의 식사 자리, 풋볼 선수인 사촌과의 대화를 보면 그의 내면이 잘 드러납니다. 아무리 사촌이 거들먹거려도 앤드류에게는 사촌이 속해있는 팀은 ‘그래봤자 3부 리그’일 뿐입니다. 여자 친구와 만남이 지속되지 못하는 것도 비슷한 이유입니다. 그는 그냥 점수에 맞춰서 입학하고, 진로는 차차 생각해 보려는 여자 친구와 달리 뚜렷한 목적이 있어서 셰이퍼 음악학교에 진학했으며, 그 꿈은 ‘최고의’ 음악학교에서 이루어진다는 걸 알고 있는 학생입니다. 가학적인 플렛처 교수와 그런 방식을 수용하는 학생 앤드류. 둘의 관계가 재밌어 지는 지점은 앞서 말한 이런 캐릭터의 사제가 만났다는 점일 것입니다. 이들의 관계는 일반적인 교육적 사고관으로 볼 때는 비정상적이고, 또 처벌의 대상이 될 수도 있지만, 최고의 연주를 위해서 나아간다는 목표를 가진 두 사람의 만남이라는 점에서는 일종의 기폭제가 되어 주는 것이지요. 




영화에서 플렛처 교수의 말로만 설명되는 졸업생 션의 존재가 시사 하는 바가 큽니다. 수업 도중, 플렛처 교수는 자신의 제자이자 훌륭한 연주자였던 이 얼마 전 교통사고로 죽었다며 애도의 시간을 갖는데요. 알고 보니 그는 플렛처 교수의 강압적인 교육을 받은 후 일등을 향한 욕망을 이기지 못하고 자살을 택했다는 엄청난 비밀이 숨겨져 있었던 것이지요. 션이 맞은 비극적 최후는, 학교나 부모의 관점에서 본다면 어쩌면 앤드류에게도 닥칠 수 있는 ‘위험’이며 그는 이런 사악한 선생으로부터 격리되어 보호받아야 할 대상입니다. 한 가지 예로, 연주회에 늦어 드럼스틱을 두고 온 앤드류가 그걸 찾으러 가는 장면이 나오는데요. 교통사고로 온 몸에 피를 흘리면서도 앤드류는 병원으로 가는 대신 연주장에 목숨을 걸고 도착합니다. 사정이야 어쨌건 그는 최고의 연주를 할 연주자이고, 숨이 끊어지지 않는 한은 이 임무를 완성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로 연주라니 말도 안 되지 싶습니다. 결국 앤드류는 실수를 했고, 플렛처 교수는 분노했으며, 연주는 엉망으로 치닫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건, 앤드류가 그 꼴을 하고서도 연주장에 오는 것, 그리고 그런 그를 무대에서 내쫓지 않는 것이야 말로 이들이 가진 관계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플렛처 교수가 오늘날 영어 단어에서 가장 해로운 말로 꼽은 것은 ‘잘했어’라고 합니다. 그저 잘했어로 일관하며 안주하고 만족하고 넘어갈수록 결국 최고의 삶에서는 멀어지는 것이지요. 앤드류는 그래서 손에서 피가 나면 밴드를 붙이고, 또 밴드가 젖은 피로 미끄러지면 다시 밴드를 붙이며 그 한계를 넘고 인정받으려 최선의 노력을 다합니다. 두 남자가 도달하고자 한 경지는 그래서 ‘스타벅스 재즈 앨범’같은 듣기 좋고 평범한 곡을 탈피한 진짜 재즈 연주입니다. 한 분야에 미쳐 본 예술가라면, 그 분야에서 최고가 되기 위해 마음을 바친 사람이라면, ‘이만 하면 됐어’ ‘이만하면 잘했어’같은 섣부른 타협은 절대 불가능하다는 것이지요. <위플래쉬>의 마지막 장면, 플렛처 교수와 앤드류가 예술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10분은 그래서 짜릿하고, 범접할 수 없는 기운을 보여줍니다. J. K시몬스는 한 치 흔들림 없는 플렛처 교수의 카리스마 넘치는 비장미를 연기해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을 수상했습니다. 그의 노련한 에너지에 팽팽하게 맞서는 신인배우 마일즈 텔러의 연기 역시 주목할 만한 부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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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