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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

쿡방이 뜨면, 디플레이션 징후다?

최근 20년 동안 한국 경제의 모습은 물가가 상승하는 인플레이션으로 채워져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만큼 물가가 떨어진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들었고, 오히려 물가가 과도하게 상승하는 현상을 잡느라 ‘물가를 잡는다’는 안정 대책이 국정 운영의 최우선 목표가 되기도 했었죠.


그러나 정부가 지난 16일 내놓은 내년 경제정책 방향에는 한국경제가 저성장의 덫에 갇혀 있다 보니, 그동안 걱정하던 인플레이션이 아니라 디플레이션(물가 하락)에 빠지지 않도록 하기 위한 내용이 담겨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의 소비자물가는 작년 12월 이후 올해 10월까지 11개월 연속 0%대를 기록했으며 11월에 들어서야 겨우 1퍼센트가 오르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일부에서는 무슨 0%대냐며 체감물가는 훨씬 더 높을 거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물가를 실제 통계로 내기 시작한 1965년 이후 50년 만에 가장 긴 기간의 0%대 기록이 생긴 것입니다.


 

우리 경제가 디플레이션 또는 ‘일본형 장기 침체’로 빠져들고 있다고 전문가들이 목소리를 높이는 이유도 이처럼 물가 상승률이 너무 낮은 수준을 이어가고 있기 때문이지요. 더불어 성장률 역시 2~3%밖에 안 되는 저성장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디플레이션이란 무엇이고 왜 생기는 걸까? 디플레이션에 빠져들면 어떤 현상이 발생할까요? 아울러 우리나라만 이렇게 물가가 낮은 수준을 보이고 있는 것인지, 우리 경제의 기본이 디플레이션화될 가능성은 얼마인지 그 궁금증을 풀어봅니다.




 좋은 디플레이션과 나쁜 디플레이션이 있다?


디플레이션은 물가가 오르는 인플레이션과는 반대로 물가가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현상을 말합니다. 이는 영어로 DEFLATE’가 원래 타이어나 풍선에서 바람이 빠져 오므라든다는 뜻이기도 하지요. 물가하락은 통상 저성장과 실업 증가를 부르기 때문에 요즘엔 디플레이션을 통상 물가 하락과 경기 침체가 동반하는 현상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바람 빠진 풍선이 널브러져 있는 것처럼, 물가하락과 함께 경제가 활력을 잃고 있는 상황을 상상하면 될 것입니다.


디플레이션이 발생하는 이유로는 크게 두 가지를 듭니다. 첫 번째는 생산성 및 기술이 급격하게 향상되는 경우입니다. 자동차, TV 등의 성능은 크게 좋아지고 있지만 가격은 제자리걸음 또는 내리기도 하는 걸 생각하면 됩니다. PC를 새로 사려는 사람이 가격이 떨어지기를 기다리면 죽을 때까지 PC를 못 산다는 이야기도 같은 맥락입니다. 중국과 같은 세계의 공장에서 값싼 상품을 쏟아낼 경우에도 해당 상품들을 많이 사서 쓰는 나라는 물가하락 압력을 받게 될 것입니다.


두 번째는 수요 감소가 상당기간 이어지면서 성장 체력 자체가 떨어지는 경우입니다. 대표적인 예가 1990년대 초반부터 최근까지의 일본 경제입니다. 일본은 1980년대 중후반 크게 부풀어 올랐던 부동산과 주식시장의 거품이 동시에 터지면서 부동산과 주가가 급락했습니다. 동시에 성장률이 낮아지고 실업률이 높아지자 사람들이 상품과 서비스를 덜 사면서 물가도 하락하거나 소폭 오르는데 그치게 됩니다. 일본의 고령화가 급속히 진전된 것도 수요가 감소한 원인이라고 하겠습니다.




 너무 미루기만 하는 소비, 경제 구조 위축을 불러


소비자 입장에선 물가가 지속적으로 떨어지는플레이션이 그리 나쁘지 않게 보일 수도 있습니다. 같은 소득으로 좀 더 많은 물건을 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 돈을 빌려준 채권자의 입장에서도 물가가 계속 하락한다는 것은 미래에 받을 돈의 구매력이 커지는 것이지요. 하지만 디플레이션이 지속되면 기업 수익이 줄어들 것이고 그에 따라 고용 규모와 임금 크기가 모두 부진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기업이 부실해져서 파산을 하거나 채무자만 늘어나면 이자 조금 받으려다 원금을 되려 떼이는 경우 역시 비일비재해질 것입니다. 


디플레이션은 한번 발생하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나면서 좀처럼 빠져나오기 어렵다는 것이 역사적 경험입니다. ‘소비 위축->투자 부진->고용 악화->소득 감소->수요 부진->소비 위축’이라는 악순환의 고리가 반복되기 때문입니다.



일본의 풍속도를 한번 살펴볼까요. 일본의 다이이치 생명보험이 매년 연말 직장인을 상대로 짤막한 시를 응모 받아 우수작을 뽑는데요. 1999년에는 ‘기분 좋게 100엔 숍에서 과소비하기’가 선정되었습니다. 100엔이면 우리 돈으로 1000원 안팎인데 과소비라니, 그것도 기분 좋게라니요? 그만큼 살기 어려운 세태를 비꼰 것이었습니다. 주부가 주고객층이었던 100엔 숍은 최근 들어 직장인 남성들도 일회용 커피, 양말, 넥타이 등을 사기 위해 찾고 있다고 합니다.


요즘 우리나라 TV에서 크게 인기를 끌고 있는 ‘쿡방 (요리하는 것을 보여주는 방송 신조어)’은 이미 일본 대중문화에서는 익숙한 현상입니다. 비싼 외식 대신 집에서 요리해서 먹는 경우가 늘어나는 것이지요.



통신 판매와 인터넷 주문만으로 모든 것을 집에서 배달 받아 해결한다는 ‘스고모리(둥지 속) 소비’라는 신조어가 나올 정도입니다. 한발 더 나아가 ‘소유하지 말고 만족하고 살자’면서 잠시 빌려 쓰거나 공유만 하는 트렌드도 늘고 있습니다. 명품 목걸이나 구두 등을 빌려주는 대여 사이트의 인기는 물론 자동차와 집까지 공유하지요. 쪼들린다고 해서 소비와 소유의 욕망을 억제하기보다는 대여 또는 공유를 통해 소비와 소유를 누리는 방식으로 소비행태가 바뀌고 있는 것입니다.




 유럽 국가들처럼 디플레이션에 대한 경계를 늦추지 말아야


물가가 하락 안정하는 흐름은 최근 주요 선진국들에서 공통적으로 찾아볼 수 있는 현상입니다. 미국이 선뜻 금리를 올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나 유럽이 추가적인 경기 부양에 나서겠다고 하는 것도 물가가 0% 안팎이면서 때로는 마이너스로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이 같은 상황에서 금리를 올리기만 하거나 경기부양에 소극적일 경우 자칫 일본과 같은 디플레이션에 빠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우려가 깔려있죠. 


따라서 주요 선진국들은 향후 물가를 어느 정도 끌어올리려는 ‘리플레이션(REFLATION) 전략’에 나설 것으로 보입니다. 나라마다 경제 및 정책여건이 다르기는 하지만 금리 인하 또는 양적완화 재정지출 또는 감세 소비 관련 규제완화와 같은 경기 진작책으로 사람들의 소비심리를 부추기고 수요를 늘림으로써 결과적으로 물가가 오름세를 유지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일본 아베 총리의 아베노믹스가 대표적인 리플레이션 정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과도한 가계부채, 고령화 및 저출산에 따른 경제활동 인구 비중의 감소, 비정규직의 증가, 기업들의 해외 진출 등에서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일본과 엇비슷하게 가고 있습니다. 고령화가 급속히 진전되는 가운데 전자와 자동차 조선 등 주력 업종들이 주춤거리는 상황이 계속될 경우 디플레이션으로 진입할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습니다. 쿡방과 1000원 숍은 물론 자동차와 가전제품의 대여 또는 리스가 등장하는 등 디플레이션의 징후도 이미 많이 찾아볼 수 있습니다. 위기는 위기가 아니라고 할 때 온다는 점에서 경계의 끈을 늦추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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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