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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

현대판 굴비가 되어버린 에어컨, 폭염보다 무서운 ‘전기 누진세’

쉽게 물러설 기미가 보이지 않는 2016년 여름. 더위도 더위지만 서민들을 뒷목 잡게 만드는 것이 또 하나 있습니다. 바로 ‘전기 요금 고지서’인데요. 주택용 전기요금에 적용되는 누진세 탓에 더운 여름, 에어콘도 마음껏 틀지 못하는 가정이 많습니다. 더위에 지친 사람들의 ‘등골 브레이커’가 되고 있는 전기 누진세에 대해 알아보고 한시적 완화 정책에 따른 계산법까지 살펴보겠습니다. 

 


우리나라 전기요금은 기본적으로 2부 요금제를 선택하고 있습니다. 2부 요금제란, 기본료와 사용량요금으로 구분하는 정책인데요. 여기에 주택용, 일반용, 산업용, 교육용, 농사용, 가로등 등 여섯 가지 용도별, 전압별 차등요금제도 적용되고 있죠. 또, 사용량이 늘어나는 계절, 시간에 요금을 더 물리는 차등요금제도 시행하고 있는데요. 특히 주택용 전기에는 ’누진제’가 적용되는데, 이는 가정에서 전기를 많이 쓰면 쓸수록 KWh당 단가를 높게 책정하는 요금체계를 뜻합니다. 요즘 화제의 중심에 있는 이 ‘주택용 누진세’. 그렇다면 주택용 누진세는 왜 생겼고, 어떻게 적용되고 있을까요? 

 


현재 6단계인 한국 전기요금의 누진 구간들은 각각 서로 다른 기본요금과 사용량요금 체계로 이루어져있습니다. 사용량이 늘어나면 누진 구간의 기본요금과 사용량요금이 함께 증가하도록 되어 있는 것인데요. 최소 구간인 1단계와 최대구간(6단계)간 누진율은 무려 11.7배! 해외의 경우 주택용 전기요금 누진구간이 2~3단계에 불과하고 누진율도 최대 2.5배 정도입니다. 대만 5단계(2.4배), 일본 3단계(1.4배), 미국 2단계(1.1배)이며 영국이나 프랑스, 캐나다는 단일요금 체계. 이렇게 다른 나라와도 크게 차이 나는 누진율과 누진세에 사용자들의 불만이 쌓이고 있는 것입니다. 

 


주택용에만 전기 누진제가 적용되는 것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도 큽니다. 상업용(일반용)과 산업용에는 누진제가 적용되지 않기 때문인데요. 얼마 전까지, 문을 열고 에어컨을 가동하는 상점이 있었던 것도 그 이유 때문이죠. 국제에너지 기구의 최신 보고서를 살펴보면 한국은 산업용 전력소비 비중이 가정용을 크게 웃돌고 있습니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2010~2014년 사이 가정용 전력소비는 0.5% 늘어났고, 산업용 전력소비량은 4.0%로 큰 폭으로 증가했습니다.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일반적인 경향과는 좀 다른 셈인데요. OECD 국가의 전력소비 경향을 살펴보면, 산업용 소비 비중이 32.0%, 가정용이 31.3%로 비슷합니다. 이런 현상이 한국 주택용 전기요금 누진제의 영향으로 가정에서 전기 사용을 자제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하는 측도 있고, 우리나라 산업구조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주택용 누진세는 1974년 오일쇼크 당시 도입되었습니다. ‘전력이 부족하니 전기는 될 수 있으면 산업용으로 사용하자’는 명분으로 만들어졌죠. 또, 전기절약을 유도하고 저소득 가정 요금부담을 줄이기 위한 목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현재는 상황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우리나라 전기 생산량이 이미 세계 상위권이며, 가정 전력 사용량이 20% 늘어나도 전체로 따지면 2.6% 상승하는 것으로 사용량 증가가 그리 크지 않다는 점에서 누진제의 필요성이 약해지는 중입니다. 또, 누진제 개편이 대규모 정전 사태를 불러올 것이라는 예상도 설득력이 떨어지죠. 전력수급이 중요한 시간은 오후 2~3시지만 가정용 전기 소비 시간대는 오후 8~10시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저소득 가구의 전기 사용이 늘어나면서 전기 누진제도가 오히려 저소득층의 부담을 가중시킨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는 상황입니다. 뜨거운 감자 누진제, 논란의 주인공이 될 만하죠? 


지칠 줄 모르고 계속되는 폭염에 혹서기가 이어지는 가운데, 전기요금 걱정에 에어컨은 ‘현대판 굴비’가 되어가는 중. 이에 전기요금 누진구간과 누진배율 완화를 주장하며 ‘전기요금 부당이득 반환청구’에 참여 신청을 하는 사람도 점점 늘고 있는데요. 이에 정부는 긴급 협의회를 열고 7~9월간 한시적 누진제 완화로 가계 부담을 줄이는 방법을 내놓았습니다. 지난 해 여름에는 6단계인 주택용 누진제 체계 중 3단계(201~300KWh)와 4단계(301~400KWh)을 통합해 요금을 적용하여 703만 가구가 1,300억원의 전기요금 경감효과를 보았는데요. 올해에는 각 구간의 폭을 50KWh씩 높이는 방법을 선택했습니다.



가장 낮은 누진제 1단계는 현행 100KWh 이하에서 150KWh로, 높은 단계인 6단계의 경우 기존 500KWh 초과 가정이 적용 대상이었다면, 16년 7월부터는 550KWh를 초과하는 가정부터 적용됩니다. 예를 들어 한달 420KWh 쓰는 가정은 평소5단계 요금(417.7원)이 적용되지만, 7~9월에는 4단계 요금(280.6원)을 내게 됩니다. 가구 당 약 19.4%의 요금 인하 혜택이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이번 누진세 완화 정책은 7월분부터 소급 적용됩니다. 


그러나 급하게 내놓은 대책도 ‘미봉책’이라는 비난이 나오고 있습니다. 근본적으로 전기요금체계를 바로 잡을 필요가 있다는 뜻이죠. 이에 정부는 전기요금 체계와 누진체계를 개편할 TF팀을 꾸리고 올해 말까지 개편 방안을 마련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이 TF팀은 공청회를 통해 여론을 모아 연말까지 전기요금 체계를 손보게 되는데요. 해외 사례, 과거 나왔던 누진세 개편 의견과 에너지 취약 계층 문제 등 다양한 문제를 검토하게 됩니다. 누진제 폐지에 대한 목소리도 있지만, 현재 거론되는 방법은 누진 구간을 3단계로 축소하고 최고 11배까지 달했던 누진비도 크게 완화하는 것입니다. 


누진세 완화 정책이 발표되고 나서야 비로소 에어컨 전원버튼을 눌렀다는 안도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혹독했던 이번 여름이 도리어 시대에 맞지 않는 전기요금체계를 고치고 불합리했던 부분을 개편케 한 좋은 계기가 된 것 같습니다. 더위에도 언제나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가는 라이프앤톡 가족 여러분께 하루라도 빨리 청량한 가을이 찾아오기를 바랍니다.  




김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