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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

가계를 책임지던 효녀 심청이가 현대사회에 살았다면?


‘심청전’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고전 소설로, 조선 시대에 쓰인 판소리계 한글 소설입니다. 지은이와 정확한 창작 시기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필사본, 판각본, 활자본 등 80여 종의 다양한 사본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태어나 7일 만에 어머니를 여의고 눈먼 아버지를 모시다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려고 인당수에 몸을 던져 희생한 내용으로, 예부터 전해오는 효행 바탕으로 형성된 소설입니다. 1912년에는 이해조가 ‘심청전’을 신소설 ‘강상련’으로 개작하기도 했습니다.



▶심청의 어머니, 가장의 죽음


소설 속 주인공 심청의 어머니 곽 씨 부인은 딸을 낳고 7일 만에 병으로 세상을 하직하지만 어진 성품이 옥황상제의 눈에 띄어 옥진 부인으로 환생해 용궁에서 딸과 재회합니다. 소설 도입부에 곽 씨 부인에 대한 자세한 소개가 나오는데, 그녀는 양반의 자제로 현철(賢哲)하여 덕과 아름다움과 절개를 갖추었고, 제사를 받드는 법이나 살림하는 솜씨며 못하는 일 없이 다 잘하였다고 표현되고 있습니다. 가세가 기울자 그녀는 삯바느질, 삯빨래, 술 빚기, 떡 찧기, 동네 혼상대사(婚喪大事) 음식 만들기 등 한시도 몸을 쉬지 않고 알뜰히 살림을 챙깁니다. 눈먼 남편을 대신해 집안 경제를 책임지는 실질적 가장인 셈입니다. 그런 그녀가 갑자기 숨을 거두니 청이네는 하루아침에 생계가 막막해졌겠지요.


곽 씨 부인은 어린 딸과 눈먼 남편을 남기고 숨을 거두면서 남긴 유언은 다음과 같습니다. “저 건너 김동지 댁에 돈 열 냥을 맡겼으니 그 돈 찾아다가 나 죽은 초상에 쓰시고, 항아리에 넣은 양식 해산(解産) 쌀로 두었다가 못 먹고 죽고 가니 장사 치른 다음 양식으로 쓰시고, 귀덕 어미는 나와 친한 사람이니 내 죽은 뒤에라도 청이 안고 가서 젖 좀 먹여 달라 하면 괄시는 안 하리다.”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 그저 가족 걱정뿐입니다. 가계를 책임지는 가장의 급작스러운 사망은 예나지금이나 남겨진 가족들의 경제적 불안으로 이어집니다. 배우자는 생계를 위해 무슨 일이든 시작해야 하고 부채가 있다면 채무의무가 전가될 것입니다. 노후에 대한 불안이 야기되며, 자녀는 교육기회 상실로 이어질 수도 있습니다. 심각한 경우에는 가족이 해체되기도 합니다.



만약 청이가 지금 시대를 살았다면


청이 가족이 현재 대한민국에 태어났다면 어땠을까요? 청이가 열 살이 넘어서부터 바느질과 길쌈을 했지만 소득은 최저생계비 이하에 그쳤을 가능성이 큽니다. 우리나라 국민으로 소득이 최저생계비 이하에 해당한다면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 따른 보호를 받게 됩니다. 본 법은 ‘신청주의’로 본인이 직접 관할 읍∙면∙동 주민센터에 접수하면 소정의 소득과 재산 심사의 과정을 거쳐 생계∙주거∙의료∙교육∙자활급여 등을 지원받을 수 있습니다. 

 


2000년부터 시행 중인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은 지난 2015년 7월 도입 14년 만에 새롭게 개정됐습니다. 법 개정은 ‘부양의무자의 소득기준 완화’, ‘교육급여 지급 시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 ‘주거급여 지급 시 해당 지역 월세 수준의 반영’ 등을 주요 골자로 하고 있습니다. 또한 기존에는 가구 소득이 최저생계비 이하인 경우 생계, 의료, 주거, 교육급여 등 모든 급여가 획일적으로 지원됐지만, 소득이 기준을 초과하더라도 수급자 상황에 맞춰 필요한 급여는 계속 지원하는 맞춤형 방식으로 개선됐습니다. ‘국민기초생활보장법’으로 대표되는 공공부조제도는 오늘날 청이 가족과 같은 사회적 약자에게 최후의 사회안전망으로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공양미 300석를 돈으로 따진다면?


심봉사는 딸을 마중하러 나갔다가 개천에 떨어져 죽을 위기에 놓입니다. 그때 마침 길을 지나던 몽운사 화주승이 심봉사를 건져주는데 딱한 사정을 듣고 몽운사에 공양미 300석을 시주로 올리고 지성으로 빌면 두 눈을 뜰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해줍니다. 이에 심학규는 공양미 300석을 시주하기로 덜컥 약조를 하고요. 그런데 심학규가 지금 어떠한 처지입니까? 앞 못 보는 자신을 대신해 딸자식이 동네 품을 팔아 겨우 풀칠하는 처지인데 어떻게 공양미 300석을 구할 수 있다는 건지, 참 앞뒤 생각 없는 행동이었습니다. 



그런데 공양미 300석은 현재 가치로 하면 얼마 정도나 될까요? 석[石]은 척관법[尺貫法] 단위로, 우리가 쓰는 kg으로 환산하면 1석(石)은 144kg입니다. 그러니 300석은 43,200kg에 해당하고, 쌀 한 가마니가 80kg이니 총 540가마니가 되는 겁니다. 등급에 따라 다르지만 현재 쌀 20kg 시세가 평균 5만 원 정도이니 한 가마니는 약 20만 원으로 정도, 따라서 공양미 300석은 시가 약 1억 800만 원에 해당합니다.


하지만 당시 쌀이 현재보다 훨씬 더 귀했기 때문에 단순 시세 비교는 맞지 않습니다. 300석의 현재 가치를 추정해보는 다른 방법이 있습니다. 조선조 정조 때 ‘이긍익’이란 사람이 쓴 ‘연려실기술’이란 책에 보면, 조선조 세종 때 관리들의 녹봉(祿俸), 즉 월급이 계급별로 나뉘어 기록돼 있는데 당시는 돈이 아니고 현물 곡식인 쌀, 보리, 콩이 지급되었다고 합니다. 1년 녹봉으로 정 1품(영의정, 좌∙우의정)은 쌀 11석(石) 2두(斗), 그리고 콩 6석(石)을 지급받았습니다. 쌀값 대비 콩 값(약 12배)을 감안해 모두 쌀로 환산하면 총 83.2석입니다. 2014년 기준 국무총리 연봉이 1억 5천2백만 원이니 이를 대입해 보면 300석의 현재 가치는 약 5억 4천8백만 원으로 추정 가능합니다.  


이렇게 어마어마한 쌀값을 무릅쓰고서라도 심봉사가 눈을 뜨고 싶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심청전 도입부를 보면 심학규는 처음부터 봉사는 아니었습니다. 대대로 내려오며 벼슬하던 명망이 자자하던 집안 자제로 태어나 나이 스물에 눈이 먼 것으로 나옵니다. 눈을 뜨고자 하는 욕심도 있었겠지만 일단 두 눈만 뜨면 아마도 딸 좋은 옷 해 입히고, 맛있는 음식 배불리 먹이고, 교육도 제대로 시키고 싶었을 것입니다. 심학규에게 있어 공양미 300석은 이 모든 것을 이뤄줄 수 있는 도구였던 것입니다. 하지만 무엇이든 분수를 망각하고 무리하면 문제가 생기는 법입니다. 결국 심청이 인당수에 몸을 던지게 되는 사태가 발생하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우리나라 많은 부모들이 지나친 자녀 교육비 지출로 생활이 궁핍해지는 에듀 푸어(edu-poor)를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갓난아이 심청이는 현대에서 살아남을 수 없었다


심청이 인당수에 빠져 죽자 홀로 남은 심봉사는 하나뿐인 착한 딸을 자기 욕심에 죽게 했다는 죄책감에 하루하루를 후회와 눈물로 보냅니다. 게다가 몽운사 주지승 말대로 청이 목숨과 바꾼 공양미 300석을 부처님께 바쳤건만 수년이 지나도록 감긴 눈은 떠지지도 않습니다. 말 그대로 딸 잃고, 쌀 잃고 눈도 뜨지 못한 채 늙고 외로워 수발 들어줄 사람도 없으니 이제 딱 죽게 생긴 것입니다. 


그런데 심봉사가 살았다는 황주(黃州) 도화동(桃花洞) 주민들은 정말로 착하기 그지없어 보입니다. 이들은 곽 씨 부인이 죽었을 때도 딱한 사정 알고 십시일반(十匙一飯) 돈을 모아 장례를 치렀는데 ‘비록 가난한 집 초상이라도 상여 치레는 매우 현란했다’고 묘사됩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청이 어릴 적 젖동냥할 때 돌아가며 젖 먹여주고, 어린 청이가 춘하추동(春夏秋冬) 사시절(四時節) 밥 빌러 갈 때도 밥에 김치 장까지 아끼지 않고 덜어주던 따뜻한 사람들입니다. 여유롭지 못한 상황에도 남의 딱한 사정을 내 일처럼 여기고 도움에 인색함이 없는 따뜻하기 그지없는 이웃들인 거죠. 이는 ‘지역공동체(community)의 상호부조 기능’이 건강하게 제대로 작동하던 당시 조선의 시대상을 반영합니다. 


하지만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어떤가요? 이웃사촌이란 말이 무색할 정도로 실제 앞집 옆집 사는 사람 얼굴도 모르고 지내는 경우가 다반사입니다. 최근 더불어민주당 기동민 의원(보건복지위원회)이 밝힌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무연고 사망자 수는 2015년 1,245명에 달합니다. 이는 4년 전인 2011년 693명 대비 179% 급증한 수치입니다. 연도별 추이를 살펴보면 2012년 741명, 2013년 922명, 2014년 1,008명으로 매년 꾸준히 증가했고요. 



2014년 무연고 사망자 중 주민등록번호 파악이 불가능한 사람을 제외하고 나이를 확인할 수 있는 무연고 사망자를 연령대별로 보면, 50세 미만 무연고 사망자가 187명으로 2013년 117명보다 59.8%나 증가한 것으로 나타납니다. 이는 홀로 쓸쓸히 죽어가는 고독사가 65세 이상의 노인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으로 해석되는 부분입니다. 노인뿐 아니라 사회안전망에서 벗어난 사람들에 대한 관심과 정책적인 대안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심청전은 주인공 심청이 용궁에서 옥황상제를 만나 옥정연화(玉井蓮花) 꽃봉오리에 실려 황궁으로 인도돼 황제와 혼인한다는 다소 비현실적인 판타지 요소와 결혼을 통한 신분상승이라는 한계를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아버지의 눈을 띄우려고 인당수에 몸을 던져 자신을 희생하는 모습에서는 그 어떤 이야기보다 부모에 대한 효(孝)라는 주제를 극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고을마다 효자, 효녀비를 세워 효행(孝行)을 장려하던 우리 선조들의 의식이 나날이 희석되는 오늘날 심청전은 부모 모시기를 부담스러워하는 이때 심청이의 이야기가 새삼 새롭게 다가옵니다.


김치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