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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

재개봉 영화와 노후준비의 공통점은?

1995년 국내에 개봉한 <중경삼림(重慶森林)>이란 영화를 2013년 다시 본 기억이 있습니다. 첫 개봉 때는 캐릭터도 줄거리도 공감이 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18년 뒤 같은 영화를 보면서는 예전과는 전혀 새로운 느낌을 받았습니다. 영화를 처음 봤던 당시 이해되지 않던 캐릭터들의 심리가 새삼 마음에 와 닿고, 영화 속 대사가 며칠이 지나도 기억에 남는 걸 보면 분명 학창 시절 봤을 때와는 다르게 받아들인 것 같습니다.


영화 자체는 바뀐 것 없이 그대로인데, 시간이 지나고 다시 보면 왜 새롭고 다르게 느껴지는 걸까요? 그 이유는 아마도 영화를 대하는 관객의 나이와 인생 경험, 처한 상황이 변했기 때문이 아닐까요? 그러면 노후에 대한 우리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은퇴준비에 대한 입장도 우리가 처한 상황과 경험, 나이에 따라 다르게 느껴질까요?



연금 있었으면 나이 일흔 넘어 택시 몰까


얼마 전 급한 볼일이 있어 택시를 탔습니다. 기사분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은퇴 설계 관련 업무에 종사하고 있다는 말씀을 드렸더니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퇴직 시 인사담당자가 연금 수령을 강력히 권유했음에도 고집을 부려 일시금으로 받았다고 하셨는데요. 그때 연금으로 신청했었어야 했는데, 생각 없이 일시금으로 찾아서 두고두고 후회 중이라는 것입니다. 


‘누가 이렇게 오래 살 줄 알았겠느냐’는 말씀과 함께 ‘연금이라도 있으면 일흔 넘은 나이에 택시 몰 일이 뭐 있겠냐’는 것이 말씀의 요지였습니다.



그렇다면 지난 30년간 우리나라 공무원의 연금 수급 비중 추이는 어떻게 될까요? 1980년대 중반만 하더라도 연금 수령 선택자는 30%대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대다수가 일시금으로 퇴직금을 수령한 것입니다. 지금 생각하면 언뜻 이해가 가지 않지만 당시 시중 금리가 20%대 중반이었음을 감안하면 납득이 갑니다. 


이후 고령화와 저금리로 대변되는 급격한 환경 변화는 은퇴자들로 하여금 평생 생활비가 지급되는 연금을 선호하게 만들었죠. 현재 공무원연금의 연금 선택 비중은 95.6%에 달할 정도로 절대적인데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퇴직자 대부분이 연금을 선택하고 있습니다.



부모세대 보며 젊은층 미리미리 연금 가입


선진국들의 고령화 추세는 우리나라와는 달리 시간을 두고 천천히 이뤄졌습니다. 그래서 일부 유럽 복지 선진국 중에는 연금제도 역사가 100년이 훌쩍 넘는 나라도 있는데요. 이렇다 보니 노후는 누가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준비하는 문화가 정착되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경우에는 조금 다른데요. 은퇴하고 나서 연금만으로 편안한 노후를 보내는 부모 세대를 본 경험 자체가 전무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노후준비에 대한 막연한 인식은 있지만 실질적 준비에 대해서는 무감각하고 서툰 경우가 많습니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그랬습니다. 그런데 최근 변화가 감지되고 있습니다. 이미 누적 수급자 수가 1,437만 명을 넘은 국민연금이 이러한 인식 변화에 한몫하고 있는 것입니다. 적더라도 매달 나오는 연금의 소중함을 체감하는 어르신들이 주변에 점점 많아지고 있습니다. 


특히 2008년부터는 ‘완전노령연금’ 수급자가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완전노령연금은 국민연금을 20년 이상 납입한 가입자가 받는 연금으로, 1인당 월평균 수령액은 88만 6,200원(2016.10기준)에 이르는데요. 월 연금 수령액 분포를 보면 100만 원 이상의 비중이 33.4%로 가장 많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소득 수준이 높은 전문직이 아닌 이상 일반인 근로자가 매달 100만 원의 용돈을 부모님께 드리기란 쉽지 않습니다. 연금이 효자란 말이 나온 이유인데요. 얼마나 큰 집에 사는지, 봉양해 줄 자식이 몇 명인지 보다는 실질적으로 매달 내 통장에 다달이 들어오는 연금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말입니다. 


우리나라 다층소득보장 제도의 짧은 역사를 감안할 때 현재 연금을 수령하고 계신 어르신들은 연금으로 노후를 보내시는 첫 세대에 해당합니다. 공적연금이 됐든, 사적연금이 됐든, 노후소득을 분히 준비해 두지 않을 경우, 생활비 마련을 위해 근로를 계속해야 하기 때문에 노후는 고단할 수밖에 없습니다.


수십 년 전 개봉했던 영화가 재개봉된 후 다시 감상했을 때 새로운 느낌을 받았던 것처럼, 노후에 대한 느낌 역시 은퇴준비시기와 은퇴를 한 이후가 전혀 다를 것입니다. 지금은 굳이 필요하지 않아서, 보험료가 부담스러워서 꺼려질 수 있습니다. 실제로 연금이 노후에 도움이 될 지 의심이 갈 수도 있고요. 그러나 막상 노후가 다가오면 미리 준비하지 않았던 과거가 후회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문가들과 인생 선배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영화야 재개봉 후 새로운 느낌으로 다시 보면 그만이지만, 소중한 우리의 인생은 단 한 번뿐이기 때문입니다.


김치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