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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영화기자가 들려주는 영화 속 보험이야기 <이별까지 7일>

  

드라마 <미생>에서 오과장(이성민)이 회사 업무 스트레스로 만취해 집으로 가는 에피소드가 유독 기억에 남습니다. 영문도 모르는 가족들과 맞닥뜨릴 오과장의 발걸음을 보고 있으니, 그날만큼은 집에서 그를 기다리는 가족의 존재가 부담스러워 보였는데요. 이런 상황에서 오과장의 고뇌를 더 잘 이해하는 건 오히려 가족이 아닌 회사 동료들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흔히들 가족을 두고, ‘표현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사이’라고 하지만, 각자의 생활에 치이고부터는 어느 순간 되려 남보다 더 먼 존재가 또 가족이지 싶은데요. 이시이 유야 감독의 영화 <이별까지 7일>은 이렇게 각자의 삶에 치여 어느 순간 서로에게 소홀해진 모든 가족들을 향해 근본적 질문을 던지는 영화입니다.

 

 

가족에 대한 사랑의 진심이 묻어나는 영화 <이별까지 7일>

 

 

“가족이란 무엇인가요?”라는 원론적 질문을 던지면 자칫 거창하고 공허한 조언으로 끝나버리게 될 공산이 큰데요. 영화에서는 그래서 아주 구체적인 안건이 주어지고, 덕분에 그 해답도 한결 피부에 와 닿습니다. 바로 평생 그 자리에 있을 줄 알았던 가족의 버팀목인 엄마갑자기 뇌종양으로 시한부 선고를 받게 된 것입니다. 부쩍 기억을 잘 못하는 레이코(하라다 미에코). 친구들과 만났을 때 아끼던 선인장 이름이 가물가물한 건 애교 수준이었습니다. 큰 아들 고스케(츠마부키 사토시) 내외가 아이를 가졌다는 전화 통화 내용도 순간적으로 깜빡 해 버립니다. 그러고 보니 요즘 통 그런 일들이 있었지 싶어 작은 아들 슌페이(이케마츠 쇼스케)에게 치매가 아닐까 물어도 봅니다. 


슌페이는 "그냥 나이 탓이지 건망증을 자각할 정도면 치매는 아니야"라고 별수롭지 않게 여기지만 엄마의 건망증사실 뇌종양 증상이었던 것이죠. 더 기가 막힌 건 엄마에게 남은 시간고작 일주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문제라고들 말하지만, 막상 내 일이 되기 전까지는 실감할 수 없죠. 그런데 그 설마가 기정사실이 되면 억지로라도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어지는데, 그 과정은 단순히 심적인 단계에 머물지 않습니다. 당장 병간호부터, 병원비 문제라는 물리적 ‘안건’들이 가족 각자에게 할당되고, 그 순간 개인적인 업무도 마비 상태가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밝혀진 건 엄마의 병뿐만이 아닙니다. 엄마가 정신을 놓은 후 방언 터뜨리듯이 말문을 열면서 겉으로는 그냥 저냥 굴러가던 가족에게 있던 문제들이 가시화된 것인데요. 불행했던 자신의 유년 시절부터, 학창시절 집밖에 나오지 않고 은둔형 외톨이로 지내온 큰아들을 돌보느라 아르바이트를 그만두며 생활이 궁핍해졌던 일, 가장이지만 늘 자기 사업에만 매달릴 뿐 가족에게 도움이 되지 않았던 남편(나카츠카 교조)에 대한 불만도 빠지지 않습니다. 자식들은 ‘왜 우리 부모는 남들만큼 해주지 않을까’ 불평하지만, 정작 가족의 경제 사정은 형편없었습니다. 버블 경제 시절, 내 집 마련의 꿈을 가지고 무리해서 산 도쿄 근교의 주택 때문에, 남편의 고정수익이 끊기면서 대출이 눈덩이처럼 불어났고, 늘 대출을 또 다른 대출로 막으면서 돈 걱정 하며 살아오느라 엄마는 하루도 마음이 편했던 날이 없었습니다. 결혼과 학업으로 집을 떠난 자식들의 빈자리, 그녀를 기다리는 건 무관심한 남편과 쓸쓸한 집뿐입니다. 


결국 엄마의 암세포 가족의 붕괴로 대변되는 일본사회의 붕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지요. 그런데 한편으로는 소원했던 가족에 대해 고민할 시간을 안겨주는 기능을 합니다. 영화의 한 장면 중 엄마가 아끼던 선인장 밑에 자신이 죽게 되면 절대 자식들에게 폐 끼치지 말라는 메모가 남겨져 있는 장면이 있습니다. 그렇게 자식을 향한 엄마의 마음이라는 ‘밑거름’이 있었기에 다시 이 가족도 다시 뭉칠 수 있지 않았을까요? 엄마의 병과 회복의 과정이 왜 가족의 위기 극복에 중요한 문제가 되었는지 생각하게 되는 대목입니다.




 

<이별까지 7일>은 작가 하야미 가즈마사가 시한부 뇌종양 판정을 받은 자신의 어머니의 이야기탕으로 쓴 소설 <모래위의 팡파르>를 원작으로 한 작품인데요. 작가는 자칫 시한부 환자의 이야기로 미화될 걸 우려하여 어머니가 투병 중인 당시부터 담담한 톤으로 자극적인 수식 없이 쓰려 노력했다고 합니다. 엄마, 큰아들, 작은아들, 아빠의 챕터로 나뉘어져 엄마가 뇌종양 선고를 받은 이후, 각자의 입장이 고스란히 기술되어 가족 각자의 상황과 입장에 ‘나’를 대입할 수 있는 지점을 만들어 주고 있지요. 그리고 엄마의 죽음이라는 명제 앞에서 눈물로 마무리하는 대신, 결국 그 극복에 대해서 고민한다는 점에서 더 깊은 울림을 자아냅니다.




 

<이별까지 7일>의 진짜 핵심은 그래서 후반부에 집중되어 있는데요. 일주일이라는 카운트가 시작된 후, 가망이 없어 보였던 엄마의 병은 가족들의 정성을 통해 새로운 희망을 발견하게 됩니다. 늘 우유부단해서 부인뿐만 아니라 큰아들에게까지 의지하기 바빴던 아버지, 고스케의 고군분투에도 “우리가 모은 돈은 아이를 위한 것”이라며 치료비 보태는 것에 싫은 내색을 하던 임신 3개월의 고스케 아내, 그리고 별생각 없이 하루하루를 보내던 슌페이. 처음 우왕좌왕하던 가족들은 그 절박한 일주일 사이커다란 변화를 맞이하게 됩니다. 아버지는 자신 때문에 빚 보증을 선 큰아들의 며느리에게 가서 진심으로 자신의 무능을 사죄하고, 아들들은 엄마의 병을 치료할 수 있는 병원을 백방으로 수소문 하며 마지막 희망을 찾아 나선 것입니다.

 

공교롭게도 원작이 발행된 날이 2011년 3월11일이었는데요. 바로 동일본 대지진이 있던 날입니다. 지진의 피해를 예측하지 않았지만, 가족의 부재에 무방비상태로 노출된 우리에게 와 닿을 수밖에 없는 이야기이었는데요. 이시이 유야 감독은 “이상적인 가족은 없다. 정상적이고 건전한 가족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이야기 했습니다. 그래도 가족이기에 희망을 놓지 않고 찾아가야 한다는 것이죠. 그 것이 7일간의 아픔이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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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