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점차 따뜻해지면서 글램핑이 다시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글램핑(Glamping)은 화려하다(Glamorous)와 캠핑(Camping)을 조합해서 만든 신조어로 몇 해 전부터 엄청난 유행을 하고 있죠. 글램핑은 캠핑에 경험이 없는 일반인들을 위해 모든 시설이 다 갖춰져 있어 인기가 많은데요. 특히, 아이들이 있는 집안에서는 봄/가을 나들이의 필수코스로 각광받고 있습니다.
얼마 전 인천 강화도 동막 해수욕장 근처 글램핑장에서 약 7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화재로 인해 많은 국민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었습니다. 더군다나 우리를 더욱 안타깝게 하는 소식은 해당 글램핑장이 무허가 시설로 화재보험에 가입되어 있지 않아 피해자 보상에 난항을 겪을 것이라는 소식이었는데요. 환절기 화재로 인한 사고는 항상 막대한 재산과 인명 피해를 가져오곤 하지요. 실외활동이 많아지는 요즘, 안전사고에 대한 주의가 더욱 절실해지는 시기임에 틀림없습니다. 그 옛날 런던에서도 화재로 인해 엄청난 피해가 있었지요.
▶ 노스트라다무스가 예언한 런던 대화재
1999년 세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예언서로 유명한 노스트라다무스를 여러분들도 잘 알고 계시죠? 남프랑스 출신의 의사이자 점성술사로 1555년 『제세기』란 예언서를 통해 본인의 죽음뿐만 아니라 후원자인 앙리 2세의 죽음, 프랑스혁명, 나폴레옹의 등장 등을 예언하여 점성가로 주목을 받게 되었지요. 그의 예언의 따라 1999년에도 밀레니엄 버그니 종말이니 하면서 21세기가 절대 오지 않을 것처럼 인구가 회자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의 예언서에서 1666년에 발생한 런던 대화재에 대해서도 아래와 같은 예언을 했었는데요.
실제로 1666년 9월 2일 새벽 2시경, 토머스 패리너의 빵 공장에서 일어난 불이 삽시간에 런던 시내를 잿더미로 만든 사건이 있었죠. 당시 건물들은 대부분 목재로 지어졌고 때마침 강풍이 연일 부는 바람에 불길은 급속도로 퍼졌는데요. 게다가 소방담당자의 무책임한 대처로 인해 불길이 조기에 진화되지 않아, 약 5일간 87채의 교회, 1만 3천여채의 건물이 불에 탔었습니다. 이로 인해 런던 대화재는 런던 시내 가옥의 약 80%를 태워 수많은 이재민을 발생시켰어요.
영국 정부는 불타버린 런던 시내를 재건하는 과정에서 또 다시 대화재가 일어날 것을 염려한 영국은 목조 건축에 제한을 두었어요. 이후 런던은 석조와 벽돌 건축물들을 위주로 재건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는데요. 런던 대화재가 이렇게나 막대한 피해를 낸 데에는 당시 영국의 도시화현상이 한몫을 하였어요. 17세기 런던은 유럽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도시 중 하나였고, 이때는 지방에서 런던으로 옮기는 이촌향도 현상이 시작되던 시기였죠. 지방에서 올라온 가난한 사람들이 좁은 런던에 몰리면서 자연스럽게 목재로 급하게 지은 거주 밀집 지역이 늘어나게 되었고 결국 대화재 당시의 런던은 도시 곳곳에 거대한 나무더미들이 잔뜩 쌓여, 이것들이 불길을 더욱 치솟게 하는 충실한 도우미 역할을 했던 것이었죠.
살고 있던 도시 전체가 불타 없어져버린 당시 런던 시민들의 충격은 도저히 말로는 형용할 수 없었습니다. 더군다나 지난 수십 년 동안 계속되었던 내란과 역병으로 가뜩이나 흉흉해져 있던 런던 시민들에게 이 화재는 그들의 앞날을 더욱 불안하게 만드는 하나의 계시와 같이 받아들여졌을 것이고요. 이러한 불안 속에서 런던 시민들은 앞으로 혹시 또 다가올지 모르는 재앙에 대비하기 위한 자구책을 마련하기 위해 고심하였고, 많은 사람들이 화재보험의 필요성을 깨닫게 되었어요.
▶ 화재보험은 어떻게 탄생했을까요?
런던 대화재를 계기로 그 동안 소극적이던 영국 정부도 이듬해(1667년) 런던 시내 도시계획에 화재보험 회사를 운영할 부지를 확보해주었어요. 그러나 화재보험 상품의 설계가 어려워 수차례 실패를 거듭는데요. 1680년 마침내 치과의사 니콜라스 바본은 국왕의 명을 받아 11명의 직원들과 영국 최초의 화재보험 회사를 설립했어요. 니콜라스는 엄격한 청교도인 아버지 밑에서 원래 의사였지만 얼마 후 건설업자로 변신한 것이었죠. 당시 그는 가장 능력있는 런던의 건축가 중 하나였다고 해요. 그는 새로운 건물을 지으면서 화재보험을 통해 위험을 관리할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고, 때마침 런던 정부의 요청에 따라 보험회사를 설립하게 되었죠.
혹시나 화재가 발생하여도 그 피해 금액을 보상해준다는 제안은 한창 도시 재건 공사에 열을 올리던 런던 시민들에겐 그야말로 솔깃한 소식이었어요. 제대로 된 이름도 존재하지 않고 그저 화재사무소로 시작했던 니콜라스의 회사는 런던에서만 5,000건이 넘는 보험을 판매하게 되었고, 이와 유사한 기능을 하는 화재보험들이 급증하기 시작하였죠. 니콜라스의 회사는 단기간에 정착한 대표적인 화재보험회사 가운데 하나가 되었고, 1705년 피닉스 화재 사무소로 개명하면서 약 100여년 간 영업을 지속하였어요.
물론 이전에도 화재로 인한 손해를 보상해주는 제도는 일부 지역에서 존재해왔습니다. 각지에 흩어져 있던 길드 등의 조합에서는 화재 등의 사고로 발생한 손해에 대해서 구성원들이 돈을 모아 보상해주는 기능이 있었죠. 그러나 이것은 전반적인 손해보험의 역할을 하던 조합의 공제가 화재시에도 보상을 해준 것이지, 독립적인 화재보험이 존재했다고 보기는 어려운 면이 있었습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화재보험회사는 1710년 런던의 찰스 포베이가 설립한 런던 보험회사인데요. 이 회사 역시 화재보험 가입 붐에 힘입어 빠르게 전국으로 영업망을 확대하였으나, 왕실의 후광을 업고 독점적인 지위를 누리는 과정에서 ‘런던 보험회사’라는 이름이 걸림돌로 작용하였어요. 이에 런던 보험회사는 1726년 주식회사로 전환하면서 개명하게 되는데, 바로 선 보험사무소(Sun Insurance Office)였죠.
회사가 이름을 ‘태양(Sun)’으로 하게 된 데에는 재미있는 고사가 있습니다. 당시 영국에서는 화재보험 가입자에게 금속의 화재 표지를 나누어 주었는데, 이 표지를 대문 앞에 부착하여 사람들에게 화재보험에 가입되어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었죠. 그런데 런던 보험회사의 화재 표식은 ‘불타오르는 태양’의 모습을 하고 있었고, 이것을 보고 회사명에 활용하게 되었죠. 1710년에 개업한 선 보험회사는 그 후에도 여러 차례 합병을 거치며 현재 전 세계 140개 국가에 약 1,700만 명의 가입자를 가진 RSA 보험그룹으로 그 명백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 화재보험의 성공으로 인한 다양한 보험의 등장
런던 대화재로 인한 화재보험의 탄생으로 사람들의 중요한 인식의 변화가 있었음을 알 수 있는데요. 바로 재해 또는 재난에 대한 대비에요. 불가항력적인 재난을 신께서 내린 운명으로 수긍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이것에 대비하고, 혹시 사고가 일어나도 그에 대한 보상을 받는 방법을 강구해내기 시작한 것이죠. 일반 사람들보다 훨씬 더 많은 위험을 감수해야 하고 손익계산이 빠른 상인들은 진작부터 이러한 개념을 갖고 있었지만, 모든 사람들이 재앙이라는 위험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시작한 것은 이때부터라고 말 할 수 있게 되었죠.
이런 화재보험의 성공에 힘입어 17세기 말 영국에서는 다양한 종류의 수많은 보험이 난립하기 시작했어요. 해상보험은 물론이거니와 질병이나 장애의 구제를 위한 보험, 빚을 변제할 능력이 되지 않는 이들을 위한 보험, 친구의 죽음으로 보증이나 채무로 어려움에 빠진 사람들을 위한 배상보험, 자녀가 많은 이들의 양육을 위한 보험 등 그야말로 셀 수 없는 종류의 보험들이 등장해 보험의 춘추전국시대를 이루게 된 것이죠.
거의 오늘날에 필요한 보험들이 이때 즈음에 거의 다 발생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죠. 그리고 이렇게 생겨난 보험들 가운데 가장 마지막으로 생명보험이 탄생하게 되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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