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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7년 간의 감금 끝에 탈출에 성공한 모자의 실화 <룸>


매화, 개나리, 벚꽃, 진달래처럼 꽃들이 앞다투어 풍경을 장식하는 계절입니다. 이상기온 때문이라는 설명을 듣고도, 이 아름다운 ‘습격’에는 일단 속수무책 이 됩니다. 물론 뉴스가 전하는 올봄 사정은 좀 다릅니다. 선거 막바지에 이른 각 정당들의 상대 후보 책잡기가 보도되고 물가는 나날이 오르고, 갑의 횡포도 여전히 단골 뉴스로 오르내리는 요즘입니다. 얼마 전엔 세 살짜리 조카를 발로 걷어차 숨지게 한 이모의 사건이 보도되기도 했는데요. 이후 범인이 그 아이가 실은 조카가 아니라, 형부에게 성폭행 당해 낳은 친자라는 발언을 해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만개한 꽃들과 별개로, 세상은 참 극악하고 잔인하게 순환하고 있구나 싶어지는데요.계절의 아름다움과 따로 떨어진 뉴스의 부조화를 체감하면서 이 영화 <룸>을 떠올렸습니다. 


<영상삽입: 네이버 영화, http://movie.naver.com/movie/bi/mi/mediaView.nhn?code=130989&mid=29768>


영화는 17살에 납치되어 무려 7년간 창고에 갇힌 채 성폭행당하고, 출산을 하고, 아이를 키우며 지속적인 학대를 당한 여성 조이의 탈출을 그리고 있는데요. 조이는 아들에게만은 그 끔찍한 현실을 전가하지 않으려 갖은 노력을 다합니다. 외부를 알 수 있는 장치라고는 천장 위의 채광창이 전부. 밖에서 잠금장치가 되어 있는 3평 남짓의 방 안에는 침대와 부엌, 세면대, 화장실이 한꺼번에 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제 막 다섯 살이 된 조이의 아들 잭은 바깥세상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으니, 이 범행 장소가 태어나서부터 경험한 세상의 전부가 됩니다. “안녕 화분, 안녕 TV, 안녕 세면대….”하며 천진한 인사를 건네며, 그렇게 왜곡된 세상을 인지하는 소년을 보고 있으면 가슴이 답답해집니다. 더 놀라운 일은 이 기막힌 이야기가 만들어낸 이야기가 아닌 오스트리아에서 일어난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일이라는데 있습니다. 요제프 프리츨은 자신의 딸을 11살 때부터 24년간 지하 창고에 가두고 성폭행 한 후, 7명의 아이를 출산하게 만든 잔인무도한 행각을 감행했고, 이 사건은 2008년에야 세상에 알려지게 됩니다. 극악무도한 이 사건은 소설 <룸>으로 출간되었고, 이후 지금의 영화로까지 만들어지게 됐습니다.

 


사실 이런 소재의 영화를 보는 건 퍽이나 괴로운 일이기도 합니다. 납치, 감금, 성폭행 같은 소재들을 호기심 어린 시선에서 접근한다면, 자칫 영화적으로 사건이 이용당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을 텐데요. 그래서 영화를 만들 때 감독이 표현에 있어서 더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 주기를 바라게 됩니다. <룸>이 자극적 소재라는 함정에 빠지지 않고 호평을 받는 데는, 아무래도 이 우려의 지점에 있어서 영화가 가지는 태도가 조심스럽기 때문일 것입니다. 영화는 조이가 처한 힘겨운 상황을 아들 잭의 시선에서 바라보는 기술을 하고 있는데요. 범죄 행위로 인해 이 땅에 태어났지만, 잭은 아무것도 모르는 천진한 소년입니다. 피해자인 조이는 그런 자신의 아들을 보면서, 자신을 추스르고 엄마로서의 의무를 다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동시에 가지게 됩니다. 조이가 가지는 생의 의지가, 잭이 된다는 것은 사회적인 시선으로 볼 때는 매우 아이러니한 상황이 아닐 수 없는데요. 영화를 보면서 우리가 숙고하게 되는 지점 중 하나입니다.


<룸>은 그래서 단순히 조이와 잭이 감금의 장소인 ‘룸’을 탈출하는데서 이야기를 매듭짓지 않습니다. 감금에서 풀려난 조이가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 다시 행복하게 살았다고 하기에는, 사건의 크기는 너무 크고 7년은 너무 긴 시간입니다. 집으로 돌아온 후에도 조이가 풀어야 할 숙제는 줄어들지 않습니다. 그 사이 조이의 부모는, 아마도 딸을 잃고 난 후 갈등을 컸던 탓인지 이혼을 했고, 어머니는 새로운 가정을 꾸리고 있습니다. 그녀의 아버지는 사건의 피해로 태어난 손자를 받아들이기 힘들어합니다. 조이와 어머니와의 갈등도 끊이지 않습니다. 더군다나 그녀를 호기심의 대상으로 소비하려는 언론의 태도 역시 그녀에게는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 돼 버립니다. 이 영화의 본격적인 시작은, 그러니까 조이의 탈출기가 아니라, 탈출 후부터 일 지 모릅니다. 


가까스로 바깥세상으로 나왔지만, 이제 그녀는 세상에 존재하는 온갖 편견과 호기심의 시선으로부터 무너지지 않고 소중한 아들 잭을 지켜내야 합니다. ‘룸’을 나왔더니 더 큰 ‘룸’, 3.5평의 감금방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더 커진 두려운 세상이라는 ‘룸’에 맞서서 말입니다. 바로 이 영화가 단순히 피해자 한 명의 이야기가 아닌, 가족과 인간관계에 대한 보다 깊은 성찰을 제시해 주는 이유입니다. 그리고 이 지점이야말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사건을 그저 센세이셔널하게 소비하는 대신 한 가족에게 닥친 불행과 극복의 문제로 접근하려는 감독의 연출 의도가 반영된 지점입니다.


 

영화를 주목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이 작품으로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브리 라슨의 명연기 때문인데요. 그녀는 좁은 감금실에 수감된 채 폭행당하고 출산을 하고 아이를 키우고 또 탈출을 감행한 여성의 내면을 표현하며, 높은 수위의 연기를 감당해냅니다. 도전 지점이 많은 역인 만큼 루니 마라, 에마 왓슨, 셰일린 우들리, 미아 바시코프스카 같은 또래의 알려진 배우들이 물망에 오르며 관심을 모았지만, 레니 에이브러햄슨 감독은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낯선 얼굴인 브리 라슨을 캐스팅하길 고집했는데요. 평범해 보이는 이 배우의 얼굴에 꾸미지 않은 진실성이 엿보였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촬영 때 카메라 렌즈를 넣을 공간을 궁리해야 할 정도로 창고를 재현한 촬영 공간이 좁았다고 하는데요. 이 비좁은 공간에서 브리 라슨은 아들 잭을 연기한 제이콥 트렘블레이와 하루 12시간, 5주간의 힘든 촬영을 감행합니다. 브리 라슨은 감금된 여성의 심리를 이해하기 위해 촬영 전 한 달을 집에서만 보내고, 침묵 수행에 관한 책을 읽으며 타인과 소통하지 않는 등 연기를 향한 노력도 아끼지 않았다고 합니다. 또 상대역인 잭이 편안하게 연기할 수 있도록 친숙한 환경을 만들어주고 연기를 지도했는데요. 감독은 이런 그녀의 도움이 트렘블레이의 호연을 끌어냈다며, ‘공동감독’이라는 호칭을 붙여줬을 정도입니다.


충격적 뉴스로 소비되고 말 사건을 속에서, 영화 <룸>이 전하고자 하는 말은 이렇게 많습니다. 그리고 표현하기 힘든 고통의 시간 속에서 가족과 사람 사이의 따뜻한 관계가 어떤 희망으로 다가올 수 있는지 섬세하게 지켜봅니다. <룸>이 전하는 힘들지만 중요한 이야기가 바로 여기 있습니다.






이화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