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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

조선시대 경제를 바꾼 세 명의 왕은 누구?




   

  

최근 SNS에서는 조선 시대 왕들의 여러 가지 면모를 보여주는 ‘조선왕조 실톡’이라는 재미있는 컨텐츠가 인기입니다. 뿐만 아니라 인기드라마 소재도 소현세자나 사도세자와 같은 조선 시대의 인물들이 많이 등장하고 있고요. 그러나 안타깝게도 조선 시대 경제와 그 제도에 대한 이야기는 여전히 낯설기만 한데요. 오늘는 조세나 화폐 제도를 통해 경제 개혁을 꿈꾸었던 세 명의 왕을 알아보고, 이를 통해 현재 우리 경제의 흐름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 '공평과세'를 꿈꾸다 - 세종대왕의 공법

 


지난 8월, 기획재정부가 세법개정안을 발표하면서 세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올해 발표된 세법개정안의 주요 내용은 경제 활성화, 민생안정, 공평과세 그리고 세제 합리화 등으로 정리할 수 있는데요. 특히 ‘공평과세’ 부분을 보면서, 조선 시대의 ‘성군’ 세종대왕을 떠올리게 됩니다. 보통 세종대왕은 한글창제로 민족문화를 꽃피운 <호학의 군주>로 알려져 있죠. 하지만 세종대왕의 업적 중 한글창제 못지않은 치적이 있는데요. 바로 공평 과세를 위한 ‘조세개혁이랍니다. 

 



 

위의 기록은 세종 12년, 세종대왕이 신하들과 조세 개혁안인 ‘공법’에 대한 의견을 나누는 장면입니다.

당시에는 전국의 토지를 세 등급으로 나누고, 1 결마다 30말의 세금을 부과하는 ‘과전법’이 시행 중이었는데요. 이 ‘과전법’에 대한 백성들의 불만이 커지고 상소가 이어지자, 세종대왕은 백성들을 위한 조세개혁을 계획하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오랫동안 신하와 의견을 나누었고, 심지어 새롭게 만들어진 세법을 얼마간 시범 운영해보기도 했죠. 또, 백성들을 상대로 파격적인 조선식 ‘여론조사’를 실시하기도 하고요.


이렇게 심사숙고하여 태어난 방법이 바로 ‘공법’. 토지를 비옥도에 따라 여섯 등급으로 나누고(전분육등법), 다시 농사형편에 따라 아홉 등급으로 나누는(연분구등법) 세법이죠. 세종대왕은 이처럼 생산력의 차이와 기후 변동을 고려해야 비로소 공평하고 합리적인 과세가 이루어진다고 생각했습니다.


‘세법 개정안’ 입법을 둘러싼 힘겨루기가 계속되는 요즘, 10여 년의 세월에 걸쳐 조세를 개혁하고자 노력했던 세종대왕을 떠올리게 되는데요. 현재의 세법개정안이 무사히 자리를 잡아 ‘공평과세’가 이루어질 수 있을지, 관심을 가져야겠습니다.

 


 


▶ 조선판 '경제 활성화' 정책 - 숙종의 '상평통보'

 

 

2014년 가장 중요한 키워드‘경제 활성화’. 지난달 있었던 국회 시정연설의 핵심 메시지기도 했죠. 조선 시대에도 이처럼 경제 활성화가 화두였던 시기를 찾아볼 수 있는데요. 바로 ‘숙종’의 시대입니다. TV 드라마나 영화에서는 장희빈과 인현왕후의 이야기로만 접했던 숙종. 그러나 사실 그는 누구보다 백성들의 안위와 조선의 경제에 대해 고심했던 경제 지도자였죠.



 

위의 조선왕조실록은 숙종상평통보를 만들라는 명령을 내리는 장면입니다. ‘상평통보란, 근대화폐가 발행되기 전까지 널리 통용된 금속화폐인데요. 조선 전기에는 사회•경제적 여건이 부족해 이러한 화폐가 큰 기능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조선 후기 숙종 대에 이르러, 대동법의 시행으로 상품 유통이 성장하고, 생산력과 국제 교역이 발전하자 화폐의 필요성이 커지게 됩니다.


  



이러한 흐름을 정확히 꿰뚫어 본 숙종은 고심 끝에 상평통보의 주조를 직접 명령한 것이죠. 상평통보가 유통되기 시작하자 전국에는 1,000개가 넘는 시장이 생기고, 시장마다 엄청난 일자리가 창출되었는데요. 이러한 과정을 살펴보면, 화폐개혁과 조선 후기 경제 활성화가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2014년에도 ‘경제 활성화’를 위한 노력이 이어지고 있는데요. 투자와 소비를 확대하기 위한 고용창출투자세액공제, 청년과 여성의 일자리 창출을 위한 세액공제 방안 등이 그것입니다. 현재 경제 활성화를 위해서 숙종의 혜안으로부터 힌트를 얻어보는 것은 어떨까요?

 


 

▶ 독과점방지법으로 중소상인을 보호하라 - 정조의 '신해통공'

 

 

지난 2013년 중소기업청이 실행한 조사를 살펴보면, 월평균 매출이 400만 원에 미치지 못하는 소상공인은 무려 43.4%에 이릅니다. 매출에서 원가와 각종 세금, 경비를 제외하면 아주 영세 하다고 볼 수 있는데요. 이처럼 중소상인들이 어려움을 겪는 모습은 오늘날의 일만은 아닌 듯 합니다. 정조 15년, 조선왕조실록에는 좌의정 체제공이 정조대왕에게 시장의 폐단을 토로하는 모습이 생생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당시 시전 상인들은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새로운 상인의 장사를 엄격히 금했는데요. 이것을 가리켜 ‘금난전권’이라고 불렀습니다. 금난전권을 부여받은 상단들은 상품의 전매권을 장악하여, 영세상인 및 수공업자뿐만 아니라 독점매매한 물건들은 높은 가격에 팔아 도시빈민층의 생계에서 큰 악영향을 주었습니다. 더구나 시전 상인들은 세도가와 결탁하고 있어, 막강한 권력을 유지하기 쉬웠죠. 그들은 ‘금난전권’을 통해 계속해서 상업의 이익을 독점하다시피 했는데요. 이는, 이제 막 꽃피우기 시작한 조선 상업 앞에 놓인 높은 장벽이었습니다. 


상업과 시장의 발달, 조선 경제의 변화를 날카롭게 주시했던 정조가 이 사실을 몰랐을 리 없겠죠? ’금난전권’의 폐해를 알게 된 정조 대왕은 1791년, 이를 폐지하고 일반 시전상인들도 자유롭게 상행위를 할 수 있는 ‘신해통공을 단행했는데요. 권세가와 시전 상인들은 손실을 보았지만, ‘공인’과 같은 소생산자들이 크게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신해통공’ 이야기 속 시전 상인들의 모습, 현대인들에게도 낯설지 않은데요. 체제공의 상소 중 ‘사람들의 일용품에 관계되는 것들을 제각기 멋대로…’ 라는 부분은 오늘날의 모습과 닮아있기도 합니다. 또한 신해통공은 시대에 부흥하는 신자본 세력이 당시 사회경제적 요구를 관철하여 특권적 조직을 타파하고 상업 발전의 계기를 마련한 사건이기도 한데요. 시대의 흐름을 읽은 개혁으로 백성들의 삶을 안정시키고자 했던 정조의 신념은, 오늘날 다시 한 번 되새겨볼 가치가 있겠죠? 



까마득히 먼 조선 시대. 그러나 당시의 경제와 제도의 변화가 현재 우리 모습과 놀랄 만큼 닮아 있는데요. 역사 속 교훈과 메시지를 기억하고 그 지혜를 활용한다면 어려운 시기를 훌륭하게 극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동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