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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영화기자가 들려주는 영화 속 보험이야기 <극비수사>

<출처 : 네이버영화>

 

1978년 부산에서 발생했던 초등학생 유괴사건, 당시 피해자 정효주 양은 백억 대 재산의 수산업체 사장 정연태 씨 슬하 4남매 중 막내딸이었습니다. 다행히 효주 양은 유괴 33일 만에 무사히 부모 품으로 돌아왔는데요.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이 아이는 그 이듬해 또다시 유괴를 당하고 맙니다. 범인은 몸값으로 그 당시 천문학적인 숫자라고 할 수 있는 1억 5천만 원을 요구하였고 다행히 이번에도 아이는 무사히 구출됩니다. 네. 이 거짓말 같은 이야기는 지어낸 것이 아니라 실화랍니다. 두 번째 납치 사건이 전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것과 달리 아이가 처음 납치를 당했던 사건은 언론에 보도되지 않고 조용히 마무리되었는데요. 유괴된 아이의 안전을 위해 사건 수사가 철저히 극비로 진행되었기 때문입니다. 그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에는 아이를 찾겠다는 소신 하나로 수사에 매달린 형사 공길용과 색다른 사주풀이로 아이의 생사를 예측했던 도사 김중산의 노력이 있었죠.


이미 오래 전에 잊혀졌던 사건이었어요. 그러다 최근 영화 <친구2>의 제작을 준비하던 곽경택 감독은 취재 중 공길용 형사를 만나게 되었고 이 사건의 뒷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두 번이나 아이가 납치당한 극적인 납치 사건은 처음부터 감독의 관심사가 아니었답니다. 오히려 사건 해결을 위해 갖은 애를 썼지만 제대로 인정도 받지 못하고 가려진 숨은 공로자들에게 궁금증이 일어난 거죠. 그렇게 들게 된 의문이 곽경택 감독의 형사와 도사를 주연으로 하는 <극비수사> 제작의 출발점이 되었던 것입니다.



영화 <극비수사>는 실화를 바탕으로, 은주(황채원)가 하굣길에 납치를 당하며 시작됩니다. 부산 지역 재력가인 아이 아버지(송영창)의 특별 요청으로 사건 담당 형사에 공길용 형사가 배정 되는데요. 관할도 다른 그가 이 사건을 맡기까지는 웃지 못할 사연이 숨어 있습니다. 아이의 무사귀환을 염원하며 은주의 엄마(이정은)와 고모(장영남)가 유명하다는 점술 집은 죄다 찾아다니는데요. 우환이 있을 때 토속신앙에 기대게 되는 지극히 평범한 한국인의 반응이죠. 하지만 찾아가는 점집마다 모두 아이가 죽었다며, 가망이 없다고 실망을 시키는 와중에 한 명의 도사, 김중산만이 아이의 생존을 장담하고 나섭니다. 아이의 사주를 찬찬히 풀어 나가던 그는 “분명히 살아있습니다.”라는 확언과 함께, 이 사건을 해결할 수 있는 형사로 공길용 형사를 지목합니다. 이 사건과 공형사의 사주가 맞는다는 이유인데요. 허황된 말 같지만,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던 은주 가족에게는 도사의 전언이 곧 믿음이 됩니다.


형사와 도사가 합심하여 유괴된 아이를 찾아낸다는 설정이 어디 그리 흔하겠습니까? 도사는 꼭 공 형사여야 아이를 찾을 수 있다고 하는데 지목된 형사는 도리어 김 도사를 “돈이나 빼돌리는 도사”라며 믿지 않으니 둘 사이의 일이 잘 진행될 리 없습니다. 게다가 공 형사는 경찰청 내에서 믿음을 사지 못하고 있기는 매한가지고요. 아이가 애초에 숨졌다고 단정하고 범인 검거에 매진하는 공개수사와 달리 끝까지 아이를 다치지 않게 하려는 생명의 존중으로 비공개 수사를 고집하는 것은 그 접근 방법부터 달랐다고 볼 수 있는 것이죠. 대대적인 수사로 범인을 검거해 실적을 올리는데 혈안이 된 당시 경찰들에게는 공 형사의 진정성 있는 수사 방법이 통할 리 없던 것입니다.


그 갈등의 지점이야말로 곽경택 감독이 이 사건을 영화로 만들어 전달하고자 하는 핵심이 정확히 드러나는 부분인데요. 보통 유괴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라면 유괴범과 피해자 어린이가 중심이 되게 마련입니다. 그런데 <극비수사>에서 주목하는 것은 아이를 구하려고 애쓰는 형사와 도사에요. 둘은 각자 위치도 직업도 다르지만 공통점도 여럿 있습니다. 비슷한 연배의 중년 남자. 유괴된 아이 또래의 자식을 키우는 가장. 거기에 자기 잇속 차리지 않고 소신 따라 일하는 탓에 늘 경찰 동료들보다 승진에서, 경쟁도사들보다 유명세에서 밀려나야 했던 두 소시민. 형사와 도사의 ‘이상한’ 파트너십이 이루어질 수 있던 이유는 그들이 타인에게 인정받지 못하면서도 묵묵히 자기 할 일을 해오던 사람들이었기 때입니다. 그래서 다른 건 몰라도 두 남자는 부모와 같은 마음으로 ‘아이를 살려야 한다’는 명제 앞에서는 뜻을 같이 하게 되죠. 모두가 아이를 포기하려고 할 때 끝까지 믿음을 잃지 않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영화에서 큰 재력을 가진 은주의 아버지가 아이에게 무심한 존재로 그려지는 것과도 상당히 대조적인 캐릭터들이 됩니다. 형사와 도사이기 전에 두 남자는 어린 자식들에게 좋은 거 하나 제대로 해주지도 못하고 사회적으로 능력도 없어 보이는 가장들이지만 아이들에게 진심으로 다가간다는 점에서 좋은 아버지의 상이기도 합니다.


사건의 진행과정이 모두 알려져 있는 수사극 이라는 점에서 감독에게는 픽션 요소를 포기하고 가기에는 어려운 게임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굳이 곽경택 감독은 사실 이야기를 그대로 영화에 불러옵니다. 그리고 이렇게 ‘결론’이 드러난 이야기에서조차 긴장감을 놓치지 않게 함으로써 그 저력을 보여줍니다. 전작인 <친구> 시리즈나 <똥개> <사랑>같은 작품을 통해 곽경택 감독이 그간 보여온 장점들이 이 영화에 잘 녹아있습니다. 특히 1970년대 당시 부산 거리를 실제 걷고 있는 것 같은 장소 활용, 미술, 의상에 더해 정서의 지역색까지 고스란히 반영한 배우들의 연기가 어우러지는데요. 부산 출신 배우 김윤석의 생활이 묻어나는 형사 연기는 더 탄탄한 뒷받침이 됩니다. 늘 코믹한 연기로 알려진 유해진도 웃음기를 걷어내고 진지한 도사로 나오는 모습이 신선한데요. TV 시리즈 <삼시세끼>에서 보여준 든든함도 연상되는 지점입니다. 이렇게 내공 있는 두 배우가 불러일으키는 시너지 효과는 영화의 결정적인 장점으로 작용합니다. 그 외 중견 연기자들의 활약도 돋보입니다. 혼란에 빠진 아버지 연기를 능숙하게 해내는 송영창, 아이를 납치당한 어머니의 애끓는 속을 절절하게 연기한 배우 이정은, 개성 있는 연기로 당시 분위기를 더 살리는 고모 역 장영남 등의 연기 모두가 사실감을 더하는데요. 어느 하나 돋보이려는 기색 없이 사건의 배경이 된 그 시대, 그 도시와 어우러진다는 점에서 박수를 보내고 싶은 연기들입니다.



한 편의 영화를 통해 사건 발생 근 40년 만에 당시 주인공들의 마음에만 담겨있던 이야기들이 비로소 세상에 공개되었습니다. 훈훈한 미담에 힘입어 <극비수사>는 260만 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하였고, 상반기 화제작으로 자리했는데요. 곽경택 감독이 이 오래된 이야기를 꺼내든 건 결국 오늘의 사회에 영화 속 그들이 보여주었던 시대적 온기가 부족하다는 경각심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형사와 도사가 만나 이루어낸 기적, 그 거짓말 같은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그 과거의 정서를 다시 되살릴 수 있다면, 각박한 지금보다 더 따뜻한 세상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극비수사>는 그 소박한 마음을 전달하려 한 감독의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참 착한 영화입니다.


한편, 이 사건과 영화에서는 무사히 아이가 돌아왔지만 그 납치된 동안에 아이가 겪었을 정신적 상처는 사건이 해결되었다고 해서 쉬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특히 어떤 범죄사건에 연루된 목격자나 피해자는 심한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에 시달리기 마련인데요.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주변 보호자의 따뜻한 손길과 배려가 필요할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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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정